[동아일보 사설] 2011년 5월 21일 토요일
월급쟁이에게 건보료 부담 떠넘기는 위장취업자
100억 원 이상의 재산가인데도 한 달 평균 2만2255원의 소액 건강보험료를 내는 직장가입자가 149명에 이른다. 재산이 50억∼100억 원인 569명도 소액만 내고 있다. 직장이 없는 지역가입자는 부동산 자동차 등을 기준으로 건보료를 내고 직장가입자는 월 소득을 기준으로 내도록 하는 제도의 허점 때문이다. 만일 100억 원대 재산가가 직장가입자가 아니라 지역가입자로 분류되면 보유재산 기준으로 월 24만 원 이상의 건보료를 내야 한다.
건보 지역가입자 가운데 일부는 고소득을 올리는데도 건보료를 적게 내기 위해 위장취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2009년 연소득 1억5000만 원을 올린 모 탤런트는 지인이 경영하는 택시회사에 취업해 월 90만 원을 받는다고 신고했다. 그의 건보료는 월 43만 원에서 2만2860원으로 줄었다. 건강보험공단이 조사에 나서자 그는 위장취업임을 실토하고 덜 낸 건보료 258만 원을 납부했다. 2008년 한 개그맨도 위장취업으로 건보료를 월 140만 원에서 월 5만 원으로 줄였다가 적발돼 1900만 원을 추징당했다. 위장취업으로 적발된 지역가입자는 2009년 488명에서 지난해에는 1114명으로 늘어났다.
근로자 5인 미만의 병·의원과 약국, 법률사무소 등의 운영자가 직장가입자로 전환해 건보료가 70%가량 줄어든 사례는 60만 건에 이른다. 영세사업장 근로자에게 사회보험 혜택을 주려는 정부 의도와 달리 의사 약사 변호사 등 전문직들이 차액을 챙겼다. 소득을 기준으로 삼는 건보료 부담 원칙에 어긋난다.
양심 불량자들이 덜 낸 건보료는 소득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유리 지갑’ 봉급생활자들에게 전가된다. 보건복지부는 고액 재산가의 위장취업에 관한 조사를 강화한다고 하지만 조사와 추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현재 건보료 부과 대상으로 파악되는 소득은 전체의 55% 수준이다. 부유층이 주로 갖고 있는 금융소득 임대소득은 잡히지 않는다.
직장을 퇴직해 임금 소득이 없어졌는데도 지역가입자가 되면서 건보료가 갑자기 늘어나는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재산이 집 한 채뿐인데 공시가격이 올라 건보료 부담이 늘어난다는 불만도 많이 제기됐다. 건보료는 학비 지원 등 복지 혜택 10여 종의 수혜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불합리하게 책정된 건보료 때문에 정부의 복지가 엉뚱한 곳으로 잘못 전달될 수 있다. 건보료 책정 기준을 바로 세우고 집행과정의 모순을 해소하는 것이 친(親)서민 정책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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