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주성하]
늙은 김정일이 연출하는 위험한 곡예
‘강성대국’이라는 단어는 1998년 8월 북한 노동신문 정론을 통해서 처음 등장했다. 이때 북한은 강성대국 달성 시기를 김정일이 환갑을 맞는 2002년으로 잡았다. 하지만 2002년이 되자 ‘올해는 강성대국 건설을 위한 새로운 변혁의 해’라며 말을 바꾸었다. 강성대국 건설이 실패했음을 자인한 것이다. 그해 북한은 시장경제적 요소를 대폭 도입한 7월 1일 경제관리개선조치를 단행했고 9월에는 신의주특별행정구를 발표했다. 북한 주민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발표들이었다. 주민들은 “우리도 드디어 개혁과 개방을 하는 것인가”라는 부푼 꿈을 꾸었다. 적어도 2005년 박봉주 총리를 비롯한 개혁파들이 대대적으로 숙청될 때까지는.
북한이 두 번째 강성대국 달성 시기로 정한 2012년이 다시 코앞에 다가왔다. 여전히 경제 사정은 10년 전과 별 차이가 없다. 이대로라면 내년 북한의 민심은 정권을 완전히 떠나 심각한 체제 위협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당장 주민들에게 줄 쌀도, 돈도 없다. 그래서 김정일은 지금 마지막 카드를 꺼내려 하고 있다. 2002년 그랬던 것처럼 주민들에게 ‘기대와 희망 심어주기’를 하려는 것이다. 내년에 나진선봉과 신의주 앞 황금평에서 경제특구를 대대적으로 개발하는 모습만 보여줘도 주민들은 “이번엔 정말 개방하는가 보다. 이왕 참은 것 조금 더 참아보자”고 생각할 것이다.
‘구걸외교’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김정일이 또다시 중국을 찾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분석된다. 가만히 있어도 체제 유지에 문제가 없다면 불편한 몸을 이끌고 1년 동안 3차례나 중국을 찾지 않았을 듯하다.
2012년 주민들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을 때 닥칠 분노의 민심은 김정일도 가늠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주민들에게 기대와 희망만 심어줘도 그가 죽을 때까지 권력은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은에게 권력을 상속해 줄 시간도 벌 수 있다. 여기에 경제특구가 김정일의 계획대로만 되면 경제 파탄으로 앞길이 막막한 김정은호에 숨통을 터줄 수도 있다.
물론 김정일의 대국민 쇼에는 위험도 따른다. 북한은 수십 년 동안 봉쇄와 결핍에 익숙해진 체제이며, 문을 닫고 버티는 데는 전 세계가 경악할 정도의 참을성을 갖고 있다. 문을 여는 일은 김정일에겐 익숙한 게임이 아니다. 내년 북한은 문을 조금씩 열어가다 여차하면 곧바로 문을 닫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일단 한번 문이 열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김정일도 장담하기 어렵다.
주성하 국제부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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