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민동필]
중이온가속기 세계에 개방해야
미국 페르미연구소에는 가속기가 6개 있다. 이 가속기를 이용하는 외부 사람은 1년에 2500명이 넘는다. 이들은 모두 페르미연구소의 연구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이 연구소의 직원은 약 2000명이다. 이 숫자로만 보면 외부와 내부 인원이 거의 반반인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연구소 직원 중 200명 정도만 연구자이고 나머지는 전산전문가와 공학자 등 가속기 유지 보수를 담당하는 연구 지원인력이다. 2500명의 외부 연구자와 함께 연구하는 연구소 인력은 200명 정도인 셈이다. 따라서 거의 모든 연구는 외부 인력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200명의 페르미연구소 연구원은 프로젝트를 지휘하거나 도와주고 있다. 이처럼 과학연구에서는 개방성이 최우선시된다.
이런 개방된 시설을 ‘사용자 시설’이라고 정의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은 언제든지 최우선으로 이 시설을 이용하도록 제도화했다. 외부 소속 연구자라는 장벽이 없다. 오히려 연구소 측에서는 외부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오면 더 좋아하고 감사한다. 언제나 외부와 내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연구소는 누구에게나 연구하기에 편리한 환경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좋은 연구소라는 평판이 이 연구소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들어설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KoRIA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 좋은 아이디어가 모이고 세계가 사용하는 설비여야 한다. 가속기 운영이 쉬울 리 없다. 설비를 갖추고 유지 보수하는 데 드는 돈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젊은 과학도가 자라고 우리 과학자들이 세계와 교류해 10년 후 우리가 주도권을 쥐게 될 날을 준비하는 비용으로 생각해야 한다.
KoRIA는 유일한 특징을 가진 시설이어야 하고 다른 가속기보다 우수해야 한다. 이 가속기는 그동안 우리나라의 경제력으로 보유하기 어려워 힘 있게 추진할 수 없었던 기초과학분야 연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주 초기 많은 원소의 형성과정과 천체의 진화를 이해하려는 꿈을 담고 있으며, 지금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물질의 특성 파악과 생물학적 연구에 활용하려고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다른 나라는 여러 대를 만들어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을 여러 요소를 가진 복합가속기로 구상되었다. 이 가속기의 특징은 매우 다양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성능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이온가속기의 개념설계를 끝내고 상세설계에 들어가야 하는 지금 개념설계의 설계도 일부분에 대한 표절 의혹이 제기된 것은 유감이다. 문제는 가속관의 설계가 미국의 것과 같다는 것이 아니고 이런 사실을 공개하고 그 이유를 미리 명백히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개하고 의논하는 과정이 빠졌다면 그 성능도 의심받게 된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가치 기준을 달리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갖는 도덕적인 잣대와 내용 검증도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곧 개방화로 향하는 첫걸음인 것이다. 개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명성이기 때문이다.
투명성의 결여는 사실 우리 과학계가 풀어야 할 숙제다. 이제까지 우리는 과학보다는 기술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기술보호 차원에서 완전 개방을 꺼려 왔다. 그러다보니 조금은 감추고, 조금 뒤지더라도 내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과 이익을 지켜왔다. 그러나 과학은 다르다. 최고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 이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서 추구해야 할 바는 개방이고 국제화이다. 그리고 거기에 맞는 도덕적 기준도 갖추어야 한다. 개방된 교류가 우리가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첫걸음이다. 거기서 진정으로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할 기회와 인증을 얻게 될 것이다. 여러모로 새로운 개념으로 도약이 필요한 때다.
민동필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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