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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으로 되살아난 소설가 박경리

namsarang 2011. 5. 25. 23:10

[시론/이태동]

문학상으로 되살아난 소설가 박경리

 

 

서구 지성사(知性史)에서 역사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다. 헤겔은 ‘역사는 하나의 위대한 목표, 즉 신이 나타나는 곳을 향해 움직인다’고 생각했고, 20세기 위대한 아일랜드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이 ‘역사는 숨어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실제 현실로 나타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이념적인 갈등으로 인한 남북 분단, 6·25전쟁, 그리고 민주화를 위한 수난 시대의 질곡 속에 온갖 시련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야만 했던 작가 박경리는 민족의 아픔을 문학으로 승화시키면서 그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문학적 비전을 실재적인 현실로 만들기 위해 ‘토지’와 같은 대작을 쓰며 치열하게 살았다.

이념·지역·사회갈등 문학적 치유

사실 박경리가 자신의 작가정신을 역사 속에서 구현하기에는 그의 인생이 너무나 짧았으리라. 그는 비록 갔지만, 그의 문학정신은 역사 속에 남아 ‘박경리 문학상’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이어져 하나의 현실이 될 것으로 우리는 믿는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박경리 문학상’이 제정되는 의미는 실로 큰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문단은 섹트와 학연 그리고 이념 간 갈등과 같은 복잡한 사회 문제로 생겨난 벽이 여전히 높아 어느 특정 캠프에 귀속되지 못하는 작가는 이방인의 처지를 면치 못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래서 박경리 문학상은 지역적 편협성과 이념의 도그마라는 벽을 허물고 진정한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인간의 아픔을 위무하고 평화와 사랑을 기치로 해서 인간의 원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찬양하고 갈채로 힘을 실어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박경리 문학상’은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 성격에 있어 세계 문학상을 지향한다. 그래서 1회는 국내 작가를 수상 대상으로 하고, 내년부터는 노벨상처럼 하나의 권위 있는 세계 문학상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지구촌의 모든 작가를 대상으로 한다. 박경리 문학상이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박경리 선생의 유지를 따르자는 것이다. 박경리 선생은 살아 계실 때 지구촌 여러 나라와의 친선관계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이면서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깊이 읽고 한국문학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길이 있기를 염원했다. 다른 하나는 박경리 문학상을 세계 무대에 올려놓아 세계인들로 하여금 한국문학에 관심을 갖도록 함은 물론이고 우리 작가들 역시 자신의 문학과 세계문학을 비교하는 기회를 갖게 돼 그들 스스로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도록 하자는 것이다.

세계적 수준의 한국문학 탄생 염원

 

우리는 과거 우울했던 역사의 터널을 벗어나 디지털 문명을 이끌어 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문제는 한국 문단의 작가들이 위대한 작품을 쓰는 대가(大家)로 성장하지 못하고 불꽃처럼 잠시 피었다가 퇴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인기 작가들의 작품이 범람하지만 작고한 박경리와 이청준, 그리고 박완서의 문학적 업적을 뛰어넘을 수 있는 징후나 가능성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신경숙의 작품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랐다고 자랑하지만, 모린 코리건 조지타운대 영문과 교수가 이 작품을 두고 문학성이 없는 “언니 취향의 감상적인 멜로드라마”라고 혹평한 것을 단순히 인종 차별에서 비롯된 멘트로 치부해 버리는 것은 지극히 순진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지구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다음 세대가 그들의 상상력에 새로운 불을 지피는 지적인 작업에 더욱 큰 힘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박경리 이후의 한국문학에 대한 전망은 그렇게 밝지 못할 것이다. ‘박경리 문학상’의 출범은 박경리 문학의 계승은 물론이고 그의 문학을 뛰어넘는 세계적 수준의 한국문학의 탄생을 위해서다.

                                                                                                                                                                             이태동 문학평론가 서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