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
<40> 함흥냉면
국수 면발이 쇠심줄보다 질긴 까닭은
냉면을 대표하는 고장은 평양과 함흥인데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평양으로 상징되는 관서지방과 함흥으로 대표되는 관동지방의 구분만큼 확연하게 다르다.
일반적으로는 평양냉면은 물냉면, 함흥냉면은 비빔냉면 정도로만 알고 있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원래는 평양냉면도 비벼서 먹고 함흥냉면에도 물냉면이 있다. 다만 평양냉면은 비비는 것이 썩 어울리지 않고 함흥냉면은 비벼 먹을 때 제 맛이 나는데 이유는 두 냉면의 차이점 때문이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을 구분하는 근본적인 차이는 면을 만드는 재료에 있다. 평양냉면은 메밀에 녹말을 섞어서 면발을 뽑지만 함흥냉면은 메밀이 아닌 감자녹말로 국수를 만들었다. 이 때문에 메밀로 만든 평양냉면은 쫄깃한 맛이 특징이고 감자녹말로 만드는 함흥냉면은 쇠심줄보다 질기고 오들오들한 맛이 매력이다.
겨울철에 먹었던 음식인 냉면은 본래 메밀로 만들어야 제격이다. 그리고 함흥냉면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냉면은 모두 메밀국수로 만들었다.
그런데 유독 함경도에서만 감자녹말로 국수를 만들어 독특한 맛의 함흥냉면으로 발전시킨 것은 메밀이 없었기 때문이다. 산이 깊고 지형이 험해 메밀조차 재배가 힘들었다는 것이 함경도 출신 어르신들의 증언이다.
대신 상대적으로 풍부한 감자로 국수를 뽑았는데 한반도에서 최초로 감자를 재배한 곳이 함경도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규경은 저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1824년과 1825년인 순조 갑신년과 을유년 사이에 만주의 심마니들이 두만강을 넘어 함경도 땅에 감자를 심었다고 적었다. 남미가 원산지인 감자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최초의 기록이다. 또 함경도 회령군 수성천에 사는 사람들은 감자를 심어 양식으로 삼는다고 했으니 함경도에서부터 감자가 퍼졌음을 알 수 있다.
메밀이 아닌 감자녹말로 만드는 함흥냉면은 전통적인 의미에서는 냉면이 아니다. 본고장인 함경도에서도 냉면이라는 말 대신에 감자녹말국수 또는 농마국수라고 불렀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농마국수라고 하지 함흥냉면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함흥냉면이라는 이름이 생긴 것은 광복 이후 또는 6·25전쟁 이후 남한에서 평양냉면이 크게 유행을 하면서 그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함흥냉면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함흥냉면의 또 다른 특징은 회냉면이다. 냉면에 홍어회나 가자미식해 또는 명태식해를 얹어 비벼 먹는 것인데 이런 회냉면 역시 함경도에서도 1910년 전후에 등장했다고 하니까 비교적 역사가 짧은 편이다. 따지고 보면 함흥냉면 자체가 그다지 역사가 깊은 음식이 아닐 수 있다.
감자가 우리나라에 최초로 전해진 시기를 1824년으로 보지만 종자 개량을 통해서 감자가 널리 보급된 것은 1900년 전후다. 따라서 감자녹말로 국수를 만드는 함흥냉면 역시 20세기에 들어서 발달한 음식일 것으로 짐작된다. 18세기에 이미 명성을 떨쳤던 평양냉면에 비하면 많이 늦은 편이다.
한편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전통 냉면으로 황해도 해주냉면과 경상도 진주냉면이 있다. 전분을 섞지 않고 순 메밀로 만드는 진주냉면은 명맥을 잇는 곳이 진주에서도 한 곳밖에 없다고 한다. 반면 평양냉면보다도 더 담백한 해주냉면은 경기도에서 옥천냉면으로 이름을 바꾸어 맛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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