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
북한의 녹취록 협박
기사입력 2011-06-11 03:00:00 기사수정 2011-06-11 03:00:00
북한이 조선중앙통신을 동원해 1일에 이어 그제 남북 비밀접촉 관련 협박을 하자마자 우리 언론은 일제히 속보로 전달했다. 북한은 1일에는 2500자가 넘는 장문의 기사로 협박을 하더니 그제는 녹취록을 공개하겠다며 수위를 높였다. 우리 언론의 북한 관련 보도를 북한은 완전히 차단하지만 북한의 남한 관련 보도는 우리 국민에게 숨김없이 전달된다. 자유언론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는 북한은 남한 언론을 이용해 선전전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북한의 폭로가 있고 나서 야당과 일부 국민이 “정부가 숨기는 게 있지 않느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을 보며 북한은 선전전이 효과가 있다고 판단할지 모르겠다.
▷이명박 정부 들어 진행된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접촉을 돌아보면 남한이 정상회담을 애걸했다는 북한의 주장은 터무니없다. 정상회담을 먼저 제의한 쪽은 북한이다.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조문을 위해 서울에 온 김기남 노동당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은 이명박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다. 이들은 이 대통령을 ‘각하’라고 부르며 “연내 정상회담을 하자”는 김정일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북한은 중국에도 남북 정상회담 중재를 요청했다.
▷베이징을 거쳐 어제 서울에 온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차관보는 “중국도 북한의 접촉 폭로에 대해 우려했다”고 전했다. 1차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박지원 민주당 의원도 “녹취록 공개 계획을 취소하라”고 북한에 요구했다. 박 의원은 “북한이 그런 짓을 하면 국제사회에서도 비판받지만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분들도 실망하게 된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북한 고위층과 여러 차례 접촉했던 인물의 발언이어서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지, 다른 속뜻이 담겨 있는지 속단하긴 어렵지만 북한이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다.
▷북한의 일방적인 주장은 신속하게 알려지는 반면 정부의 대응은 한참 뒤에 나와 국민이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조선중앙통신과 독점계약을 맺은 연합뉴스를 통해 북한 뉴스가 전해지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 일본의 한 주요 신문은 조선중앙통신을 수신하는 대가로 매년 약 9000만 원을 지불한다. 북한 매체의 보도는 체제 찬양과 선전이 대부분이다. 우리 언론이 북한 매체가 보도하는 뉴스를 국민에게 전달하지 않고 침묵할 수도 없지만 저들의 선전전에 이용되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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