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사설] 2011년 6월 11일 토요일
야권의 ‘등록금 촛불정치’ 보기 민망하다
6·10항쟁 24주년인 어제 서울 청계광장에서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는 촛불시위가 열렸다. 야당 정치인들도 시위에 참여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 국민참여당 이재정 전 대표는 촛불시위에 앞서 ‘야4당 공동정당연설회’를 열었다. 손학규 대표는 “국공립대만이 아닌 사립대도 똑같이 적용받는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생 자녀를 둔 가정이 높은 등록금으로 받는 고통은 이해하지만 촛불을 든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대(對)국민 사기극’으로 끝난 2008년 광우병 시위가 연상돼 오히려 학생들의 진정성이 퇴색할 우려가 있다. 특히 정치권은 등록금 문제를 시위 장소가 아닌 국회에서 풀어야 한다. 야권의 ‘등록금 촛불정치’는 보기 민망하다. 부실 대학 정리, 대학경쟁력 등 대학을 둘러싼 각종 현안을 보다 진지한 자세로 검토해 결론을 내릴 필요가 있다.
대학 구조조정만 제대로 해도 등록금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학이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하면 현행 등록금의 20∼30%를 인하할 수 있다는 것이 대학 관계자들의 말이다. 미국 명문사립대인 코넬대 데이비드 스코턴 총장의 교수실에는 책상과 2인용 탁자가 고작이다. 의대교수를 겸임하는 총장을 위해 대학은 시내에 위치한 의대 건물에 ‘번듯한 사무실’을 차리려 했지만 총장은 “병원에 병상 하나라도 더 두라”며 사양했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치자 코넬대는 건물 신축을 뒤로 미루고 교직원 감축 등 행정 슬림화, 교수 책무성 강화로 경비절감에 나섰다.
국내 대학의 행정직은 방학 때 단축 근무하면서 교수와 동일한 호봉 체제를 적용받는 곳이 많다. 서울 모 사립대 직원의 2009년 평균 연봉은 1억 원을 넘었다. 강력한 노조가 평생직장과 복지를 보장해줘 ‘신이 숨겨둔 직장’으로 꼽힌다.
미국 대학에는 안식년을 ‘골프년’으로 즐기는 한국 교수들이 흔하다. 미국 대학과 달리 안식년에도 연봉을 고스란히 챙긴다. 수원대는 교수 안식년을 6개월로 줄이고, 교직원 수를 다른 대학의 절반만 유지해 학생 장학금을 늘렸다. 교수 성과급적 연봉제를 도입하고 예산의 과다집행이나 부당집행만 없애도 등록금을 줄일 여력이 생겨날 수 있다.
어제 감사원은 전국의 4년제 대학 200여 곳의 재정운용 실태를 분석하고 등록금의 적정성을 따지는 특별감사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무엇보다 대학이 스스로 등록금 문제를 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치인들도 포퓰리즘 정책을 중단하고 국가의 재정형편까지 고려해 등록금을 낮출 수 있는 현실적인 해법에 눈을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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