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사설] 2011년 6월 9일 목요일
2004년 대학 무상교육 시작한 스페인의 7년 뒤
유로존 4대 경제강국 스페인은 2004년 좌파정부가 들어선 뒤 대학 무상교육(전원 장학금)을 실시했다. ‘완벽한 복지국가’를 내걸고 집권한 사회노동당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총리는 최저임금 인상과 무상보육에 이어 코감기까지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했다. 그 덕분에 청년들은 대학 공부를 공짜로 했지만 대학을 나와도 경제 불황으로 일자리가 없었다. 청년실업률 45%에 좌절한 젊은 세대들은 연일 반(反)정부 시위를 벌였다. 7년 뒤인 올해 5월 스페인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에 참패를 안겨준 것은 ‘분노한 젊은이’들이었다.
스페인의 공공부채는 2010년 말 국내총생산(GDP) 대비 60.1%에 이르렀다.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에 이어 구제금융을 받을 다음 차례는 스페인이라는 말이 나온다. “아이들을 공짜로 대학 공부 시키는 게 좋아 사파테로를 찍었는데 긴축재정이 시작돼 지금 내 월급은 20%가 줄었다”고 공무원들은 푸념한다.
물론 스페인은 무상이었고 한국의 정치권에서 내놓은 안은 반값 등록금으로 차이가 있다. 하지만 대학생 수는 한국이 두 배 가까이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7년 통계에 따르면 스페인의 대학 진학률은 41%다. 2010년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79%에 이른다. 2006∼2009년 한국의 연평균 국가채무 증가율은 OECD 회원국 가운데 두 번째다. 대학 등록금을 국가가 절반가량 부담한다면 한국 쪽 재정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6일 대학생 등 150여 명이 참석한 ‘반값 등록금’ 집회에 갔다가 집회 참가자들에게서 “민주당 정책이 한나라당과 다른 게 뭐냐”는 야유를 받자 바로 다음 날 “6월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올 하반기 일부 반영하고, 내년부터 모든 대학생을 대상으로 반값 등록금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맞서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는 “대학이 받는 실제 등록금을 낮추겠다”고 선언했다. 연간 수조 원에 이르는 예산조달 방안조차 마련돼 있지 않고 대학만 압박하면 등록금을 절반으로 뚝 자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여야의 반값 등록금 경쟁에는 대학교육에 대한 청사진은 들어 있지 않다. 죽어야 할 대학까지 살려놓으면 그 많은 졸업생에게 제공할 질 좋은 일자리는 마련돼 있는가.
정치권이 내년 총선 대선을 앞두고 내놓는 포퓰리즘 복지정책의 청구서는 젊은 세대와 그의 아들딸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저출산 고령화가 극심해 2030년엔 청년 한 명이 노인 1.5명을 부양해야 할 나라에서 공짜 정책을 쏟아내면 미래 세대는 정말 희망이 없는 세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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