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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변화와 개혁’ 가로막는 포퓰리즘

namsarang 2011. 6. 14. 23:47

[동아광장/한민구]

대학의 ‘변화와 개혁’ 가로막는 포퓰리즘

 

 

최근 한국을 방문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에이미 거트먼 총장은 우리 교육에 대해서 몇 가지 적절한 지적을 했다. 고교 시절부터 문과 이과로 나누고 세부전공 학과별로 입학하는 것보다는 적성에 맞는 전문 분야를 자유스럽게 선택할 수 있는 학생 중심의 유연한 교육체제를 강조했다. 거트먼 총장은 하버드대 출신으로 프린스턴대에서 근무하다가 2004년 펜실베이니아대 총장으로 선임된 여성이다. 펜실베이니아대 동문도 아닌 그가 융합교육을 내세우면서 장학금 확충과 지역사회의 기여 등 새로운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대학이 총장은 물론이고 보직교수들도 본교 출신 일색이어서 개방성과 다양성이 결여되고 있다. 총장 임기도 4년밖에 안 되고, 보직교수의 임기는 2년에 불과해 중장기 전략에 입각한 학교 운영이 어렵다. 교수 및 교직원까지 참여하는 투표로 당선되는 경우가 많아 학교 경영의 효율성 추구보다는 포퓰리즘으로 흐르게 돼 변화와 개혁은 더욱 어려워진다. 재단이 부실한 일부 사립대학은 설립자의 친인척 또는 특수 관계자들이 폐쇄적으로 학교를 운영해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세계 대학경쟁력 순위는 여러 곳에서 발표되고 있지만 영국 타임스지와 대학평가기관인 QS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THE-QS가 그중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이 평가에는 학계전문가 평가 및 교수 1인당 논문인용 횟수를 중심으로 하는 연구 실적이 가장 중시된다. 기업에서 평가하는 졸업생 평판도와 외국인 교수 및 학생 비율을 국제화 수준으로, 교육의 질은 교수 1인당 학생수로 평가한다.

‘유럽 대학 평준화’ 따라가면 안돼

하버드대 케임브리지대 등 미국 영국 대학들이 최상위권에 포진하고 있다. 풍부한 재정 확보는 물론이고 치열한 경쟁과 변화와 개방을 지속적으로 추진한 결과다. 우리나라는 대학 변화와 개혁이 미약하고 학문적 전통이 일천해 학계 전문가 평가가 높지 않으며 교수에 비해 학생들이 많아 교육의 질 및 국제화 지표가 취약하기 때문에 상위권 진입을 못 하고 있다.

영국을 제외한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대학들은 50위 이내에 거의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이 운영 재원의 많은 부분을 정부에서 지원받는 국립이고 평준화돼 있다. 그러다 보니 대학의 자구(自救) 노력과 변화 의지가 약해 대학 경쟁력이 국가적 위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독일에서 극소수의 연구중심 대학을 육성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유럽 대학은 교육의 평등권과 공공성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경쟁력이 저하되고 있다. 개방과 경쟁을 통해 성장하는 미국과 영국 대학에 비하여 경직되고 변화하지 못하는 유럽 대학의 문제는 반값 등록금 문제와 서울대 법인화에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반값 등록금 이슈로 대학가가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의 등록금이 비교적 높은 것은 사실이나 반값 등록금은 국민 정서에 호소하는 정치적 접근보다는 대학교육의 내실화와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장학금은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줘야 하는 장학금과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한 장학금으로 구분된다. 세계 대학 중 가장 경쟁력이 높은 미국 대학들은 우수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장학금을 제공하고 장학금을 받은 졸업생들이 다시 대학에 더 많은 기부를 한다. 꼭 필요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도록 함으로써 사회통합에도 기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80%가 넘어 미국 일본은 물론이고 50%대에 불과한 유럽에 비해서도 매우 높다. 1990년 40% 이하에서 불과 20년 만에 대학생 수가 배로 증가했다. 무분별한 대학 설립과 정원의 급격한 증가에 따라 일부 대학에서 제대로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아무리 제도를 바꾸어도 해결하기 어려운 대학입시 문제에만 매달려 왔다. 대학정원조정 및 인력수급 문제와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정부 지원의 ‘선택과 집중’ 긴요

정부는 부실한 대학과 비리 대학에는 장학금을 포함한 재정 지원을 엄격히 통제해야 한다. 비싼 등록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학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과도한 진학률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한국이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승자가 되려면 대학의 경쟁과 개혁을 유도해 유능한 인재양성기관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대학이 바로 서려면 치열한 경쟁을 촉진하고 과감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물론 대학의 책임성 강화 및 자율성 확보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대를 필두로 경쟁력 있는 국립대학들의 법인화는 바람직한 방향이다. 동시에 정부는 3불 정책(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과 같은 시대착오적인 입시정책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재정 지원을 통해 등록금을 낮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계적인 대학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도 소홀히 할 수 없다.

                                                                                                                                          한민구 객원논설위원·서울대교수·전기컴퓨터공학 mkh@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