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
<48> 오이지
김치의 원형… 여름철 입맛 돋우는 ‘최고의 반찬’
여름철 입맛이 없을 때 최고의 밥반찬은 오이지였다. 지금은 계절에 관계없이 어느 음식이고 먹을 수 있으니 특별히 계절음식의 소중함이 예전처럼 피부에 와 닿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냉장고가 귀했던 시절에는 겨울이 시작되기 전 김장을 담그는 것처럼 지금 같은 계절이 오면 집집마다 장마와 삼복더위에 대비해 오이지를 담갔다.
“김치나 깍두기가 이틀이 멀다 하고 시어버리는 여름철의 반찬으로 오이지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는 1935년 신문기사처럼 오이지는 여름철 필수 반찬이었다.
오이지와 관련해 의외의 사실이 있는데 우리 조상들이 먹었던 최초의 김치는 바로 오이지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뿐 아니라 인류가 처음으로 먹었던 저장채소는 오이지 또는 오이 피클이다. 소금에 절인 오이지건 식초에 절인 오이 피클이건 오이 절임이 김치의 원형인 것이다.
김치는 사전적으로 배추, 무, 오이 등의 야채를 소금에 절여 고추, 파, 마늘 등으로 버무려 담근 반찬이라고 정의한다. 그런데 원시적 형태의 김치라고 할 수 있는 채소 절임은 일반적으로 중국 고대의 시집인 시경(詩經)에 보이는 것을 최초로 본다. 시경 소아(小雅)편에 “밭두렁에 오이가 있는데 깎아서 절인 후 조상님께 바치자”라는 구절이 있다. 절인다는 표현으로 김치 저(菹)라는 한자를 사용했고 절이는 대상이 되는 채소로는 오이 과(瓜)자를 썼으니 바로 오이지다.
물론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경에 나오는 오이는 지금 우리가 먹는 오이와는 다르다. 왜냐하면 지금의 오이는 시경이 편찬된 훨씬 후인 기원전 2세기 무렵에 동아시아에 전해졌기 때문이다. 본초강목에는 한나라 때 외교관인 장건(張騫)이 서역에서 오이를 가져와 퍼뜨렸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경에 나오는 절여서 조상님께 바치겠다고 한 오이(瓜)는 동아시아에서 토종으로 자라는 참외 종류였을 것으로 본다. 과일인 참외로 오이지를 담갔다니까 지금은 낯설고 이상하게 들리지만 사실 조선시대 말기까지만 해도 참외는 과일이자 채소이며 양식이었다.
어쨌든 오이지의 역사는 이렇게 뿌리가 깊은데 그중에서도 전통적으로 맛있다고 소문난 오이지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의 문인인 최영년은 저서 해동죽지(海東竹枝)에서 경기 용인 오이지를 조선의 음식명물로 꼽으며 용인에서 나오는 오이와 마늘, 파로 오이지를 담그면 부드럽고 맛이 깊을 뿐만 아니라 국물은 시원하고 단 것이 사탕수수 즙에도 뒤지지 않는다며 극찬했다.
용인 오이지는 당시 용인군에서 나는 오이로 담그는데 수원에 살던 호사가가 용인의 오이를 수원으로 옮겨다 심은 후 오이를 따서 오이지를 담갔지만 용인군에서 수확한 오이로 담근 오이지와는 맛이 같지 않아 괴이하게 여겼다고 기록해 놓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은 명맥이 끊긴 것으로 보이는 용인 오이지의 맛이 궁금해진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잡동사니 > 음식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50> 준치회 (0) | 2011.06.24 |
---|---|
<49> 미숫가루 (0) | 2011.06.21 |
<48> 오이지 (0) | 2011.06.17 |
<47> 부추전 (0) | 2011.06.16 |
<46> 참외 (0) | 2011.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