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음식이야기

<49> 미숫가루

namsarang 2011. 6. 21. 23:14

윤덕노의 음식이야기

 

<49> 미숫가루

 

전시 비상식량, 요즘은 다이어트 식품으로 인기

 

미숫가루는 여름철 더위를 식혀주는 음료였지만 요즘은 다이어트 식품으로 인기가 높다. 소화가 잘 되고 칼로리는 적으면서 쉽게 포만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숫가루가 이렇게 살 빼는 음식으로 주목받는 데는 역사적 근거가 있다.

미숫가루는 옛날부터 한 번 먹으면 장시간 배가 고프지 않은 음식으로 유명했다. 조선시대에는 ‘한 번 먹으면 100일이 지나도 시장한 줄 모른다’고 했으니 과장이 심하기는 하지만 다이어트 식품으로는 제격이다.

실학자 홍만선은 산림경제(山林經濟)에서 미숫가루의 종류와 만드는 법, 효능을 설명하면서 미숫가루는 한 번 실컷 먹으면 일주일 동안 밥을 먹지 않아도 되고 두 번을 먹으면 49일을 굶어도 되며 세 번을 먹으면 100일 동안 배가 고프지 않고 네 번을 실컷 먹으면 영원히 밥을 안 먹어도 얼굴이 좋아지고 다시는 초췌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정도면 미숫가루가 아니라 신선들이 먹는다는 선식(仙食)에 가까운데 홍만선은 미숫가루의 유래에 대해서도 중국 태백산에 숨어사는 도사가 만드는 법을 세상에 전해주었다고 기록했으니 옛날 사람들은 미숫가루에 대해 대단한 환상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한 번 먹으면 장시간 배가 고프지 않으니 지금은 다이어트 식품으로 유용하지만 예전에는 전쟁이 났을 때 가장 먼저 준비한 음식이 미숫가루였다. 각종 잡곡을 한데 모아 가루로 빻은 미숫가루는 한 주먹 정도면 한 끼 식사로 충분할 뿐만 아니라 물에 타 먹으면 양이 늘어나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궂은 날씨에도 썩지 않아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다.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사람들은 피란길을 떠나며 미숫가루를 우선 챙겼다고 하는데 6·25전쟁뿐만 아니라 조선왕조실록에도 전쟁이 일어난다는 소문이 돌 때마다 병사들이 우선 미숫가루를 준비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역사를 보면 유사시에 대비할 때도 의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광해군 3년인 1611년, 정유재란이 끝난 지 10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아서 다시 전쟁이 난다는 소문이 흉흉하게 나돌았다. 그러자 전라병마절도사 유승서(柳承瑞)가 공문을 보내 병졸과 군역에게 전쟁에 대비해 미숫가루와 미투리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전시용 비상식량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바로 전쟁이 터질 것이라는 유언비어가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혼란에 빠진 백성들은 곧 난리가 터질 것인데 농사는 뭣 때문에 짓느냐며 일은 하지 않고 먹고 마셔대기만 했다. 또 만약에 대비한다며 피란보따리를 미리 꾸려놓고 노인과 아이를 데리고 도망갈 궁리만 하는 등 나라가 어지러워졌다.

그러자 사간원에서 전라병마절도사 유승서를 탄핵하라며 나섰다. 탄핵 사유는 큰 적이 국경 앞까지 쳐들어왔다고 하더라도 동요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하며 병사를 진정시키는 것이 장수의 도리라는 것이다. 병사를 훈련시키고 전쟁 준비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는 하지만 쓸데없는 명령을 내려서 민심을 동요시키고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은 장수의 도리를 떠나 큰 죄라는 것이다. 그러니 유승서를 잡아서 죄를 물어 민심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했다. 미숫가루가 부른 사회 혼란이다.

6·25전쟁 61주년을 앞두고 미숫가루 다이어트가 인기라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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