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窓)/이런일 저런일

김정은 ‘CNC 마법’이 통할까

namsarang 2011. 6. 17. 23:27

[오늘과 내일/홍권희]

 

김정은 ‘CNC 마법’이 통할까

 

 

양에 ‘CNC 바람’이 분 지 1년이 넘었다. 평양제1백화점 앞과 시내 대로변이나 공장 앞에 영어 알파벳 광고판이 내걸렸다. 신문 방송에 ‘CNC화(化)’ ‘CNC 도입’ 같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CNC 찬양 노래도 나왔다.

CNC란 컴퓨터수치제어라는 뜻이다. 기계부품을 가공하는 공작기계에 CNC를 연결하면 컴퓨터로 기계를 조종할 수 있다. 프로그래밍 해놓은 대로 기계가 알아서 정밀작업을 척척 해낸다. CNC 활용으로 불량이 줄어들고 생산성이 높아지는 건 물론이다.

북은 CNC의 놀라운 성능이 권력 후계자 김정은의 지도 덕분이라며 첨단기술과 젊은 지도자를 연결짓는다. 북은 CNC 보급으로 생산량이 서너 배 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부 탈북자는 “CNC가 제대로 가동이 안 돼 불량이 늘었다”거나 “CNC로 하는 척하다 재래식 기계로 재가공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한국정책금융공사가 펴낸 ‘북한의 산업’에 따르면 북은 CNC 공작기계를 생산 보급했다고 선전했지만 핵심 부품은 중국산이다. 국내에서 CNC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76년 2월이다. 한국과학원(KAIST의 전신)이 재래식 공작기계에 미니컴퓨터를 연결해 CNC 공작기계를 개발했다고 경향신문이 보도했다. 국내 기업들은 1980년부터 CNC 공작기계 수출에 나섰다. CNC 도입과 활용에서 보듯 남북한 공업 기술 수준은 약 30년 차이가 난다.

북 정권이 ‘첨단’과 ‘과학기술’을 외치고 CNC 도입 성과를 선전하는 것은 생필품 부족으로 허덕이는 주민의 불만을 완화하려는 노력이다. 올해 시정목표를 담은 신년공동사설에서 경공업 강화와 인민생활 향상 등 경제 이야기를 많이 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해 놓고 연내 뭔가 보여주지 못하면 김정일 김정은 부자는 초조해질 것이다.

북이 ‘강성대국의 문을 열겠다’고 공언한 2012년이 코앞에 와 있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 학자들에 따르면 경제에서 강성대국의 의미는 전력 금속 석탄 시멘트 양곡 등의 생산이 북한 경제가 최고조였던 1987년 수준을 돌파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서방에서는 안 믿지만 북은 그해 1인당 국민소득을 2500달러로 친다. 한국은행이 추정한 2009년 북의 1인당 소득이 1000달러였는데 중국 베트남 같은 개혁개방도 없이 자본과 자원이 부족한 채로 몇 년 사이에 ‘어게인(again) 1987’이 가능할 성싶지 않다. 북은 요즘 ‘강성대국’ 소리를 자주 꺼내지 않는다고 한다.

북은 천안함 격침 등 잇단 도발로 한국의 돈줄이 끊기자 중국에 밀착하고 있다. 작년 무역의 83%가 중국과의 교역이었다. 이달엔 황금평과 나선지구에서 북-중 공동개발 착공식이 열렸다. 미국의 북한경제 전문가 브래들리 뱁슨 씨는 3월 한국수출입은행 북한조사팀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북-중 경제관계 강화는 북한 내 시장경제 활동의 증가를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북-중 경협의 속도가 금세 높아지기엔 장애가 많다.

외자(外資)라면 모를까 ‘CNC 마법’만으로 인민생활 향상은 어렵다. 올 하반기 북한 정권의 고민이 클 것 같다. 뱁슨 씨는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경제성장을 모색하거나, 실패를 합리화하면서 기상이변 또는 남북관계 경색 등을 핑계로 대거나, 잘된 것처럼 가장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내부 불만을 외부로 향하게 하기 위해 대남 도발을 또 저지를 수 있다.

                                                                                                                                                                            홍권희논설위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