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신앙 수호한 학자, 네스토리우스파 단죄 등 이단 물리치는 데 기여 376~444. 알렉산드리아 출생 및 선종. 총대주교. 교회학자.
치릴로 성인은 당시 횡행하던 이단에 맞서 가톨릭 정통 신앙을 지키는 데 헌신한 위대한 교회학자였습니다. 특히 예수의 신격과 인격을 구분하고 성모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가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는 네스토리우스파를 단죄하는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을 쓴 정영식 신부는 치릴로 성인에 대해 "어쩌면 성인은 네스토리우스 이단을 극복하라고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분이실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성인은 어린시절부터 성직자가 되길 꿈꿨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였던 삼촌 덕분에 일찍부터 교부들의 가르침과 신학, 철학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성인은 훗날 삼촌의 뒤를 이어 총대주교 자리에 오릅니다.
25살에 사제품을 받은 성인은 총대주교인 삼촌을 보좌하며 사목을 돕습니다. 성인은 특히 많은 이들이 이단에 빠지는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가톨릭 정통 교리에 통달한 그는 치밀한 논리와 날카로운 비판으로 이단들이 주장하는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이단을 물리치고 올바른 신앙을 전하기 위해서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성인이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로 재임할 당시 네스토리우스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였습니다. 네스토리우스는 앞서 설명했듯이 그리스도 신격과 인격을 하나로 보지 않았고 성모 마리아를 '천주의 모친'(Theotokos, 테오토코스)으로 불러서는 안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대해 성직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고 일반 신자들은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이 문제는 로마 교황과 황제도 걱정할 정도로 커졌고 급기야 황제는 431년 주교들을 소집합니다. 에페소공의회로 불리는 이 공의회에서 주교들은 치릴로 성인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고 네스토리우스를 이단으로 단죄했습니다.
성인은 이후에도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가톨릭 신앙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성인은 1882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됐습니다. 동방교회에서는 성인 축일은 6월 9일에 지내고 있습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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