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회 법령, 16세기까지 교회법전 역할 ▨공의회 결과 : 70개 조항의 공의회 법령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 승인한 70개 조항의 법령 가운데 '가톨릭 신앙'에 관한 제1조와 요아킴 수도원장의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고 있는 2조를 제외하면 나머지 68개 조항은 모두 교회 생활과 규율에 관한 내용들입니다.
가톨릭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 제1조에서는 몇 가지를 주목할 내용이 있습니다. 우선 "보편 교회는 오직 하나뿐이며, 그 교회 밖에서는 결코 아무도 구원 받을 수 없다"는 대목입니다. 원래 이 표현은 3세기 카르타고 주교 성 치프리아노가 제도교회를 부정하는 이단을 단죄하기 위해 사용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도 같은 의미로, 곧 카타리파 이단을 단죄하기 위해 사용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는 표현은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그 이후에까지도 타 교파 및 타 종교 신자들의 구원 문제와 관련해 논란을 일으키는 신앙 정식입니다.
빵과 포도주가 미사 중 사제의 축성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실체변화 교리와, 누구라도 교회가 정한 형식에 따라 세례를 주면 그 세례가 유효하다는 교리도 제1조에서 명시적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1조의 마지막 구절은 동정녀와 금욕의 삶을 사는 이들뿐 아니라 결혼한 이들도 올바른 신앙과 선행으로 영원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공의회 공식 법령에 이런 내용을 포함시켰다는 것은 결혼한 평신도들의 삶 자체가 동정녀 등 독신자들의 삶에 비해 열등하다는 잘못된 인식이 당시 교회 저변에 깔려 있었음을 알게 해줍니다.
나머지 조항들을 주제별로 살펴보면, 우선 성사 생활과 관련해서 모든 신자들은 1년에 한 번 고해성사를 보고 적어도 부활절에 성체를 영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신자들에게 적용되는 교회법적 규정이 이미 13세기 초부터 공의회 법령으로 명시돼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고해사제들은 고해비밀을 지켜야 하며 이를 어기면 면직될뿐 아니라 평생 엄격한 수도원에서 평생 보속하며 지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21조). 혼인의 경우 종래 7촌 이내 혈족 간 혼인 금지 규정을 완화해 4촌까지로 제한합니다(50조). 또 혼인 공시를 의무화하고 비밀 혼인을 엄히 금하면서 비밀혼을 주선하거나 주례한 사제에게는 3년간 직무정지의 형벌을 부과합니다(51조).
성직자 생활과 관련해서는, 성직자들은 음행에 빠져서는 안 되며(14조) 폭음과 주취를 해서도 안 됩니다. 새 사냥이나 짐승 사냥을 해서는 안 되며 따라서 사냥개나 사냥용 매를 소유하는 것도 금지되지요(15조). 세속인들과 달리 성직자들은 상행위를 해서도 안 되며, 어릿광대나 연극배우의 공연 관람을 피해야 합니다. 또 검소한 복장을 해야 하며 붉은 색이나 녹색 옷을 입어서도 안 되고 지나치게 화려한 장식을 해서도 안 됩니다(16조). 사형 판결이나 집행에 관여해서도 안 되며 결투를 해서도 안 됩니다(17조).
법령은 주교좌 성당이나 수도원 성당들은 3개월 이상 공석으로 놔둬서는 안 되며(23조), 축성된 성유와 성체는 반드시 자물쇠로 채워서 보관해야 하고(20조), 수도회들은 쇄신과 개혁을 위해 적어도 3년에 한 번 총회를 열어야 하고(12조), 이미 수도회들이 너무 많아졌으므로 새로운 수도회 설립을 금하며(13조), 수도원장들은 주교직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60조)고 규정합니다.
조세 및 재산 문제와 관련, 성직자들에게는 세금을 징수하지 못하며(46조), 십일조는 세금을 내기 전에 바쳐야 하고(54조), 십일조를 회피할 목적으로 토지를 남에게 소작으로 내줘서는 안 되며(55조), 교황이나 주교의 위임에 따라 허가를 받은 경우에만 자선 모금을 할 수 있다(62조)고 규정합니다. 법령은 특히 성인들의 유해는 성골함 속에 보관해서 전시해야 하며, 새로운 유해들은 로마 교회의 허가 없이는 공경하지 말도록 하면서 무분별하고 과도하게 대사를 남용해서도 안 된다고 규정합니다(62조).
관구장 주교들은 해마다 관구 공의회를 열어 이 모든 규정들이 특히 성직자들과 관련해서 제대로 지켜지는지 확인하고 감독함으로써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개혁하도록 해야 합니다(6조).
이단 및 유다인과 관련되는 조항들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단자들은 단죄되며 이단자들에 대한 형벌은 세속 관리들이 적절하게 집행하도록 합니다. 또 이단 혐의를 받은 이들은 자신의 결백을 입증해야 하며 입증하지 못하면 파문됩니다. 파문 후 1년 이내에 회개하지 않으면 이단으로 단죄를 받습니다(3조).
유다인들과 관련해서는 유다인들의 고리대금으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해야 하며(67조), 유다인과 사라센들은 그리스도인들과 구별되는 복장을 해야 하며 특히 성주간에는 공공장소에 나다녀서는 안 됩니다(68조). 또 유다인들은 공직을 맡아서는 안 되며(69조) 세례를 받아 개종한 유다인들은 그들의 옛 예법을 지키지 말아야 합니다(70조).
이 70개 조항의 법령 외에 교황은 제5차 십자군 원정에 관한 교령을 발표합니다. 이 교령을 통해 교황은 성지 회복을 위한 십자군에 참여할 사람들은 1217년 6월 1일까지 시칠리아 왕국에 집결하라고 촉구합니다. 십자군 원정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위해 성직자들은 수입의 20분의 1을 3년 동안 바치도록 했습니다. ▨공의회 의의
첫 번째 천년기 공의회들은 황제가 주도한 공의회들이었습니다. 이와 달리 제1차 라테라노 공의회(1123)를 시작으로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1215)까지 두 번째 천년기의 네 차례 세계 공의회는 교황이 주도한 공의회였습니다.
그런데 1~3차 라테라노 공의회가 나름대로 구체적 현안이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소집된 공의회였다면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는 필적할 만한 현안이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중세 최대 규모의 공의회가 열리고 70개 조항이라는 방대한 양의 법령이 마련될 수 있었던 것은 공의회를 통해 교회 쇄신과 개혁을 추구하고자 한 교황 인노첸시오 3세의 의도와 역량이 그만큼 인정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말하자면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는 교황권의 절정기에 열린 공의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의회에서 발표한 70개 조항의 법령은 그 실제 준수 여부와는 상관없이 16세기 중반 트리엔트 공의회(1545~63년) 이전까지 성문화된 교회법전 역할을 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도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의 의의를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은 십자군 원정을 준비하던 중 1216년 7월 16일 열병으로 페루지아에서 선종하고 맙니다. 제5차 십자군은 모병에는 성공했으나 원정은 대실패로 끝났습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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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이 이탈리아 수비아코 베네딕도 수도원에 준 증여 문서. 교황은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 수도회 개혁과 쇄신을 위해 3년에 한 번씩 총회를 열도록 규정했다. 출처=한국가톨릭대사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