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동준 신부(원자력병원, 서울시립북부노인병원 원목실 담당)
기적이 일어났다. 병원사목 첫 부임지 경희의료원에 간지 얼마 안 돼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2005년 12월이었다. 24살밖에 안된 젊은이가 남자 친구가 운전하는 차의 옆자리에 앉아 가다가 사고를 당해 의식불명이 돼 병원에 입원했다. 잠시 의식이 돌아온 그는 일반 외과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병원사목을 하는 나를 위해 전 부임지 4개 본당 신자들이 성탄절을 맞아 차례로 돌아가면서 왔다. 위문 공연단의 위로(?)를 받다 보니 위로는커녕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원래 건강 체질이 아닌데다가 술도 못하는 사람이 가장 가기 싫어하는 노래방까지 끌려가 늦은 시간까지 어울렸다. 함께 어울리다 보니 내가 위로를 받는 게 아니라 그들을 위로하는 기쁨조가 됐다.
평소에 오른쪽 눈에 통증이 있었는데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니 더 아팠다. 성탄자정미사와 성탄절 미사를 집전하고 나니 빨리 숙소로 돌아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성령이 내려오셨는지 양심이 발동했는지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진 그 젊은이가 떠올랐다. 너무 힘들어 그냥 갈까말까 갈등하다가 '아니, 내일 만나러 가도 된다'는 사탄의 유혹이 슬며시 다가왔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 몸이 아무리 무겁고 피곤하더라도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그 젊은이의 영혼은 얼마나 슬프겠는가? 가장 가까운 부모와 남자친구와 영원히 작별할지 모르는데…. 혹시 내일이 되면 이미 그 젊은이가 죽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중환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중환자실에 들어가 그 젊은이를 바라보면서 하느님 연민의 마음을 품고 기도를 했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그 젊은이는 내 말을 다 알아듣고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는 것이아닌가. 혼수상태에서도 내 말귀를 다 알아듣고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측은지심이 들어 온 정성과 마음을 다해 젊은이를 위해 기도를 바치고 중환자실을 걸어나오는 순간 통증이 있던 내 눈이 갑자기 시원해지면서 낫는 것을 느꼈다. 분명 작은 기적이었다. 진정으로 남을 생각해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하느님이 치유해 주신다는 것을 알았다.
환자를 돌볼 때마다 주위 사람들에게 병원에 있으면 기가 많이 빠질 것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러나 나를 위한 충언(?)과는 상관없이 병원사목을 하면서 그 말이 뒤집히는 역설적인 사랑의 힘을 하느님이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도구로 쓰셔서 하느님이 치유하시고, 내가 진정 사랑의 마음을 가지면 놀라울 정도의 에너지가 생긴다는 것을 환자들을 돌볼수록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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