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동준 신부(원자력병원, 서울시립북부노인병원 원목실 담당)
인간은 왜 고통을 받는가? 경희의료원에 있다가 암 환우들만 있는 원자력병원으로 옮겼는데, 전 병원 분위기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침묵 속에 흐르는 차가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무거움,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적막감, 병실과 복도에서 들리는 통곡소리가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환자 대부분이 머리를 밀었고, 온몸에 고열이 나 덜덜 떨며 구토로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마실 수 없는 처절한 고통의 현장을 보며 당혹스러웠다.
용기를 내 방문한 첫 병실은 암 중에서도 가장 악성인 골육종에 걸린 어린이만 있는 곳이었다. 아이들 모두 머리를 빡빡 밀어 동자승처럼 보였다. 한쪽 다리를 절단하고 가냘픈 팔에 주사기 바늘을 꽂아 독한 항암제를 맞고 있는 아이들을 봤다. 가슴이 서늘해지고 막막해 무슨 기도를 해야 할지 몰랐다. 마음을 추스르고 한 아이(8살) 머리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했다.
의문이 드는 것은 왜 어린 아이까지 뼈에 암이 생기는 그 지독한 병에 걸렸냐는 것이다. 여섯살짜리 개신교 아이가 항암제를 맞는데 부작용으로 손가락과 발가락, 발톱까지 새까맣게 죽어 있었다. 아이를 볼 때마다 예수님과 같은 사랑을 주지 못해 가슴은 아프지만, 어찌나 맑고 순수하며 고통을 잘 참아내는지 거꾸로 내가 힘과 위로를 받았다. "기도하자"는 내 말에 눈을 질끈 감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깍지를 끼고 기도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세상에 고통이 없기를 바랄 수 없다. 가혹한 질병을 앓는 어린이 모습에서 하느님을 본다. 그러면서 왜 인생에 고통이 새겨져 있는가를 깊이 생각하고 기도해보니 답을 알게 됐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 영혼에 남겨진 영적 어둠, 심리학에서 말하는 무의식(잠재의식) 때문이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사고, 질병, 인연(악연)은 평상시 내 생각을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무의식에서 온다는 것이다.
모든 고통과 고난이 왜 일어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이 영적 어둠에서 온다는 것은 분명하다. 내 성격과 기질, 취향, 악습 등이 무의식에서 유래하는데, 이것이 우리 인생의 90%를 지배하기에 인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기가 무척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나 내 안의 영적 어둠을 치유할 방법을 의외로 간단하게 찾았다. 영혼을 맑게 하는 것이다.
그러러면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 문제(부정적인 의식, 죄, 악, 악습)가 되는 것을 먼저 살펴보고, 그것을 정확하게 찾아내고, 바르게 알고, 하느님께 봉헌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굳은 의지를 갖고 실천해야 한다. 인간은 아무리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것을 들어도 변화될 수 없다. 기도만이 인간을 변화시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