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동준 신부(원자력병원,서울시립북부노인병원 원목실 담당)
사랑만이 모든 생명을 살린다. 병원사목을 하면서 환자를 돌보기 위해 하느님께 청한 기도는 치유와 기적의 은사가 아니라 사랑의 은사였다. 당신 사랑을 갖게 해달라고, 하느님 사랑이 내 사랑이 되면 조건 없는 사랑을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어 봤지만 그 사랑이 쉽게 내 가슴을 파고들어 오는 것이 아님을 살면 살수록 깨닫는다.
환자 보호자를 통해 조건 없는 사랑을 보는 경우가 있다. 특히 자식이 환자인 경우, 어머니 대부분은 무조건적 사랑으로 목숨이라도 바쳐 자식을 살리려고 온 힘을 다해 간호한다. 그러나 자기 목숨을 바쳐 남편이나 부인을 살려보겠다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지금 근무하는 병원에서 처음으로 대단한 애부가(愛夫家)를 보게 됐다.
남편(67)이 병원에 와서 혼수상태에 빠졌는데 아내(60)가 남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지난 2월 병실을 처음 방문했을 때 "내가 똥지게를 지는 한이 있어도 남편만 살릴 수 있다면 뭐든 다하겠다"고 말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아직도 세상에 이런 분(?)이 계시는구나 하고 깜짝 놀랐다.
"엄마처럼 정신 바짝 차려야 돼! 힘내! 힘을 내면 일어날 수 있어! 어, 잘했어. 그렇게 하면 돼."
자매님은 마치 3살짜리 어린아이를 대하듯, 매일 의식이 없는 남편과 대화를 나누며 극진히 보살폈다. 그러자 넉달간 아무런 반응이 없던 남편이 기적처럼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뇌세포가 파괴돼 의학적으로 소생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뒤집고 자매님의 한결같은 사랑에 의식이 살아나고 있는 것이었다.
자매님이 말할 때마다 형제님 몸에 힘이 불끈불끈 들어가면서 움직이는데 내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자매님이 더 자극을 주기 위해 "어서 일어나! 딸 아들 결혼시켜야 돼! 빨리 일어나 돌아다녀야지"하고 말하자 남편의 온 몸에서 아주 격렬한 반응이 일어났다. 자매님이 하는 말을 다 알아듣고 있는 것이었다. 사랑은 의학적 차원을 넘어서 혼수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죽은 의식을 깨우고 있었다.
자매님은 하루도 빠짐없이 비지땀을 뻘뻘 흘리며 간병인과 같이 남편 온몸을 마사지 해주고, 팔다리를 굽혔다 폈다 하면서 몸이 굳지 않도록 온 정성을 쏟고 있다. 형제님에게 어떻게 그런 사랑을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건강할 때 너무 많은 고생을 하다가 이렇게 쓰러지고 나니 한없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생겨 이대로 죽으면 너무 불쌍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사랑의 마음이 없다면 아무리 많은 돈과 좋은 병실도 꺼져가는 생명을 살릴 수는 없다. 그러기에 사랑만이 모든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주님이 자매님 사랑을 통해 남편을 일으켜 세워주실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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