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성희]
왕따 폭력의 불편한 진실
기사입력 2012-01-06 20:00
정성희 논설위원
현재 공연 중인 연극 ‘대학살의 신’은 아이들끼리 싸움을 한 두 집 부부가 화해를 위해 피해자 집 안에서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들의 앞니 두 개가 부러진 피해자 부부는 ‘쿨’한 척하고 가해자 부부는 가식적 사죄의 말을 날리지만 위선은 오래 못 간다. 가시 돋친 말이 몇 번 오가는 중에 부부 갈등, 자녀와의 소통 부재(不在)도 드러난다. 말끝마다 ‘세계시민의 윤리’를 강조하는 피해자 엄마를 향해 고상하던 가해자 엄마가 끝내 발차기를 하며 막말을 퍼붓는다. “네 아들이 오죽 못났으면 맞고 다니냐?”고.
학교 교사만 책임질 일인가
이 대목, 관객의 폭소가 터지지만 요즘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을 생각해보면 웃음 끝에 눈물이 난다. 집단괴롭힘과 학교폭력이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어느 날 초인종이 울려서 나가 보니 삐딱해 보이는 여중생 네 명이 서 있더군요. 어쩐 일인가 했더니 ‘여기 초등학생 하나 살죠?’라고 묻더군요. 아이들이 우리 딸한테 돈을 뺏으려고 시비를 걸었는데 딸아이가 ‘우리 아빠 집에 있다’며 도망쳐 온 것입니다. 중학생들이 집까지 따라온 것이죠. 부모가 있는 집에 초인종을 누를 정도로 대담한 아이들이니 딸아이의 앞날이 캄캄했습니다.” 지인이 들려준 실화다. 그는 학생들을 집 안으로 불러들여 다과와 함께 용돈을 주어 보냈다. 그러고는 바로 다른 전셋집을 구해 이사했다.
지난해엔 동네 중학교에서 2학년 학생이 3학년생들에게 맞아 장이 파열되는 전치 6개월의 부상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외국생활을 하다 오는 바람에 옛 급우들보다 한 학년 늦어지게 됐는데, 예전처럼 반말을 했다는 것이 폭행당한 이유다. 가해 학생들은 피해 학생을 불러내 상가 화장실에서 번갈아 망을 보며 밤 12시가 넘도록 구타했다. 때리는 학생들이 팔이 아파 그만 때렸다고 한다. 피해자 부모가 분노한 것은 폭행 자체가 아니었다. “애들이 그럴 수도 있는 거다” “치료비를 물어주면 되지 않느냐”는 가해자 부모들의 뻔뻔함에 치를 떨었다. 한 할머니는 피해자 집으로 찾아와 “우리 손자 앞길 망칠 거냐”며 난리를 피우고 갔다.
왕따와 폭력의 원인을 두고 여러 분석이 나오지만 경쟁 위주 입시교육의 부작용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학업 부담과 입시경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들이 급우를 따돌리고 후배를 폭행하며 탈출구를 찾는다는 얘기다. 그러나 경쟁교육이 덜한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학교폭력은 만연해 있다. 이번에 학교폭력근절자문위원장을 맡은 조벽 동국대 석좌교수는 저서에서 말했다. “한국에서 학교가 붕괴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학교 종이 땡땡땡’ 합니다. 반면 미국에선 ‘학교 총이 땅땅땅’ 합니다.”
“내 자식만 귀하다”는 부모 이기심
가장 중요하면서도 애써 외면하는 대목이 밥상머리교육, 즉 가정교육의 부재다. 학원 잘 보내는 것이, 돈 잘 벌어다 주는 것이 자식사랑의 전부라고 여기는 엄마 아빠가 적지 않은 듯하다. 여기에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으로 “내 자식이 맞고 오면 폭력, 내 자식이 때리면 애들 장난”이라는 부모의 이기심과 이중 잣대가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학교와 함께 가정도 왕따와 폭력의 주된 책임주체다. 아이가 학교에서 생활하는 시간은 가정의 절반이 안 된다. 그리고 교사 한 명이 담당하는 학생은 30명이 넘는다.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는데 어떤 엄마는 아이를 등교시키며 ‘파이팅’을 외친다고 한다. 도대체 뭘 위해 싸우라는 것일까. 정글로 변한 교육현장의 이면에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치기보다는 ‘이기라’고 내모는 부모가 있다는 진실이 불편하다. 물론 가정 해체와 빈곤으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한 국가 사회의 책임까지 가벼워져선 안 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학교와 함께 가정도 왕따와 폭력의 주된 책임주체다. 아이가 학교에서 생활하는 시간은 가정의 절반이 안 된다. 그리고 교사 한 명이 담당하는 학생은 30명이 넘는다.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는데 어떤 엄마는 아이를 등교시키며 ‘파이팅’을 외친다고 한다. 도대체 뭘 위해 싸우라는 것일까. 정글로 변한 교육현장의 이면에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치기보다는 ‘이기라’고 내모는 부모가 있다는 진실이 불편하다. 물론 가정 해체와 빈곤으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한 국가 사회의 책임까지 가벼워져선 안 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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