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유영제]
과학영재가 의대만 바라보는 사회
기사입력 2012-01-03 03:00
유영제 서울대 화학생물
이공계가 좋기는 하지만 직업 안정성이 부족하다고 생각돼 이공계 대학 합격을 포기했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그동안 정부와 이공계가 노력을 했지만 아직 충분하지는 않다는 점을 느낀다. 돌이켜보면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이공계에 근무하던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었던 것이 사람들에게 뿌리깊이 각인됐다. 10년 전부터는 대학 입시에서 전국의 의학계열 학과 정원이 채워진 다음에야 서울대 공대 정원이 찬다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로 이공계 기피 현상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동안 정부가 많은 정책을 내놓고 이공계도 열심히 노력한 결과 이공계 기피 현상이 많이 없어졌다고 느끼지만 여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은 것이다.공학부 교수
정년연장 등 직업 안정성 보장을
우리는 21세기가 지식기반 사회임을, 따라서 지식을 갖고 있고 지식을 창출하는 것이 국가 발전의 원동력임을 잘 알고 있다. 이공계 우수 인재가 지난 50년간의 경제성장을 주도했다고 본다면 향후 50년의 국가발전도 이공계 분야의 창의 인재가 기여할 것이다.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면 창의 인재 육성에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수 인재가 이공계 대학에 진학하고 이공계 분야로 진출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의 현실은 아직도 이공계가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매력적일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첫째는 직업의 안정성이다. 우리나라 이공계 직업의 상징으로 대표되는 출연연구소의 정년은 61세로 교수의 65세보다 낮다. 지금처럼 수명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사회현상을 생각하면 나이 들어도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직장이 매력적인 것이다. 최근 외국의 추세는 나이 차별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하에 대학교수나 연구소 연구원의 정년을 없애고 있다. 우리도 차차 정년을 늘려가고 장기적으로는 정년을 없애야 한다. 그래서 전문직 간 나이에 따라 근무자격이 제한되는 차별을 없애야 한다.
다음으로는 과학기술이 학생들에게 더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다가가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반복학습에 의한 수능 정답 맞히기, 대학 입시에 맞춘 고교 교육을 빨리 정상적인 수준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최근 어느 과학교사가 전하는, 과학시험 부담이 없는 문과계열 학생들에게 과학실험 교육을 했더니 많은 흥미를 보였고, 거꾸로 이과계열 학생들은 흥미보다는 점수에 관심을 가졌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오늘의 교육이 비정상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고교 교육이 정상으로 이루어지고 대학 입시에서는 이것을 반영해야 한다. 또 어려운 문제에 도전해 풀어내는 즐거움을 맛보게 해야 한다. 그래서 과학이 너무 좋아서 과학을 할 수밖에 없다는 열정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공계를 매력적으로 만들어야
또 다른 하나는 과학기술을 통해 보람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과학기술은 인간의 질병을 고치고 먹을거리뿐만 아니라 소재와 에너지를 제공해 준다. 국방을 책임지는 것도 과학기술이고 국가의 경제발전도 과학기술이 선도한다. 과학기술 분야에 종사한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보람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최근에는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사회적 약자를, 지구촌의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는 역할까지 감당하고 있으니 얼마나 인간적인 것인가. 이 점을 학생과 국민이 공감하고 사회적으로 지지해주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과학기술은 과학기술자 몇몇의 전유물이 아닌 나와 내 이웃, 그리고 국가와 인류를 위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돼 과학기술 분야에 종사함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해야 한다.
어려서부터 과학탐구의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고 이공계 분야에 진출해 오랫동안 신명나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러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유영제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창(窓) > 이런일 저런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왕따 폭력의 불편한 진실 (0) | 2012.01.07 |
---|---|
법관 비난에 단호히 대처한다고… (0) | 2012.01.04 |
2012년을 맞으며(예술의 전당 제야 불꽃 놀이 축제) (0) | 2012.01.02 |
흑룡이 여의주를 두 개 가진 이유 (0) | 2011.12.31 |
‘한국의 기적’ 어떻게 전수할까 (0) | 2011.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