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窓)/이런일 저런일

‘한국의 기적’ 어떻게 전수할까

namsarang 2011. 12. 26. 23:47

[광화문에서/허두영]

 

‘한국의 기적’ 어떻게 전수할까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데 어떻게 세계에 석유제품(정유능력 세계 6위)과 석유화학제품(세계 5위)을 그렇게 많이 수출할 수 있죠? 간첩 잡는다고 난리를 떨며 전파를 규제하던 나라가 어느 날 갑자기 휴대전화 강국(세계 1위)이라뇨?

그 좁은 땅과 바다에 자동차나 배가 달릴 곳도 별로 없는데 자동차산업(세계 5위)과 조선산업(세계 1위)이 어떻게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죠? 그 뿌리가 어디에 있길래 반도체산업(세계 3위)과 액정화면산업(세계 1위)에서 한국이 세계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건가요?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죠?

세계의 지도자들이 한국에 대해 정말 궁금해하며 물어오는 질문이다. 궁금하다 못해 혀를 내두르며 찬탄하는 감탄사이기도 하다.

이 질문에 과연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김치의 힘? 배달민족의 우수성? 한강의 기적? 김치의 역사라고 해봤자 배달민족의 역사보다 짧고, 배달민족의 역사라고 해봤자 한강의 역사보다 짧다. 김치의 역사 2000년, 배달민족의 역사 반만년에 비하면 한강의 역사는 수천만 년이다.

김치의 힘으로 가능했다면 지난 2000년 사이에 몇 번은 했어야 하고, 배달민족의 우수성으로 가능했다면 이미 여러 번 했어야 하며, 한강의 기적이라면 수천만 년의 역사에서 왜 하필 지금 가능한지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성공에 왜 스스로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할까.

올해 ‘무역 1조 달러’의 이정표에 다다른 순간, 자랑스러운 우리 역량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광개토대왕이나 세종대왕 이래, 아니 그들을 뛰어넘어 우리나라가 반만년의 역사 동안 가장 찬란한 문명을 구가하고 있는 시점이 바로 지금이기 때문이다.
최근 프랑스와 일본에서 돌려받은 규장각 도서, 외규장각 도서, 조선왕실의궤는 정치 사회 과학 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 화려했던 역사의 기록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20일 신년 인사에서 언급한 대로 ‘세계에서 경제영토가 가장 넓은’ 지금, 그 역사는 누가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가.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최근 한국 산업기술사를 연구하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른 한국의 경제적 성공과 산업기술적 발전의 요인을 정책·제도, 제품·기술, 사회·문화의 틀에서 분석하는 것이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정책·제도의 요인이 강했고,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는 제품·기술의 요인이 두드러지며, 지금부터 슬슬 사회·문화의 요인이 부각되고 있다. 최근 세계를 휩쓸고 있는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이 사회·문화의 요인으로 빚어낸 대표적인 성과 아닌가.

정책·제도의 요인은 이제 왜 강점이 아니라 약점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는지, 제품·기술의 요인은 어떻게 더 강화할 것인지, 사회·문화의 요인은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지 분석하고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 세 요인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하는 전략도 세워야 한다.

선진국이 수백 년에 걸쳐 달성한 산업화를 한국이 어떻게 수십 년 만에 이루었는지 경험 연구로 뒷받침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개발도상국에 대한 역할모델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한국을 배우러 온 개도국의 지도자들에게 새마을운동 다음으로 무엇을 제시할 수 있을까. 그들은 한국식 기술개발 모델을 원하는데, 문제는 우리 스스로 그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