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권지예의 그림읽기]
흑룡이 여의주를 두 개 가진 이유
기사입력 2011-12-31 03:00
Black Dragon 2012-정연연. 정연연 씨(작가) 제공
2012년, 임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 임진년은 ‘흑룡’의 해라는군요. 흑룡이건 백룡이건 청룡이건 황룡이건, 여러분은 용이란 동물을 보신 적 있습니까? 12간지의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동물이지요. 하지만 이 신비한 동물은 상서로운 ‘카리스마’를 가진 영물로, 신화나 전설 속에서 우리 인간의 정신과 문화를 반만년 이상 지배해 왔습니다. 인간이 상상 속에서 용을 만든 것은 어쩌면 원초적인 신앙심의 발로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다를 수 없는 하늘로 승천할 수 있는 존재가 용이니까요. 용은 깊은 물에서 솟아올라 구름을 박차고 하늘로 멋지게 비상해야 합니다. 그래야 용이죠. 그러지 않으면 한낱 웅덩이의 이무기이거나 물뱀 신세밖에는 안 되죠. 그러므로 용틀임하며 승천하는 용은 인간에겐 용기와 희망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또한 용은 우리 조상들에게 성취의 상징으로도 여겨져 왔습니다. 그래서 입신출세의 관문을 등용문(登龍門)이라 하고, 사람이 출세하면 ‘개천에서 용 났다’고도 하지요. 용꿈을 태몽으로 태어난 역사적 위인이 많으며, 용꿈은 소원을 성취하게 하는 길몽 중의 길몽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올해는 특별히 더욱더 큰 희망을 걸고 싶어지는군요. 새해가 되면 늘 그렇듯이 말이지요. 새해가 되면 일기장이나 새해 수첩에 몇 가지 다짐을 적곤 합니다. 그런데 잊어버리고 지내다가 어느 날 문득 들여다볼 때면 참 민망할 때가 있지요. 작심삼일로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어버린 공허한 다짐들.
그래도 희망은 이루어질 때도 좋지만 꿈꿀 때도 행복한 것 아닌가요?
지난해 못다 이룬 꿈들, 답답한 일상과 힘든 일에 지쳐 곤고해진 몸과 소심해진 마음을 새로 다독여 봅니다. 불안한 정세와 허리를 졸라매야 하는 경제 사정과 불신의 풍토 속에서 짓눌리고 절망하고 한숨만 나오지만, 용이 여의주를 물고 용틀임하듯 큰 기지개를 켜고 새해를 맞고 싶습니다. 용이 물고 있는 여의주를 불교에서는 모든 소원과 희망을 이루게 해 주는 보옥이라고 하지요. 악을 제거하고 혼탁한 물을 맑게 하며 재난을 없애 준다고도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꼭 놓치고 싶지 않은 욕망과 희망의 여의주가 있겠지요. 새해엔 용이 여의주를 궁굴리듯 모든 일이 둥글둥글 원만하게 잘 풀려 나가면 좋겠네요. 여의주를 떨어뜨리거나 남의 여의주를 빼앗으려고 싸움하지도 말고요. 용 두 마리가 여의주를 서로 쟁취하려고 격렬하게 싸우면 어떻게 되겠어요? 누군가의 우스갯소리처럼 ‘용용 죽겠지!’가 되고 맙니다. 희망이란 나눌 때는 행복이 되지만 남의 희망을 빼앗으면 함께 파멸하고 맙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그림 속의 흑룡이 더욱더 아름답고 사랑스럽네요. 오색찬란한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는데, 오른쪽 앞발을 좀 들여다보세요. 더 크고 아름다운 여의주를 또 하나 쥐고 있네요. 그게 누군가에게 건네줄 여의주라고 믿고 싶은 건 저만의 바람일까요?
새해에는 들꽃처럼 힘없는 사람들도 이슬처럼 허무하고 서글프게 사라질 여의주가 아니라 작은 구슬 같은 희망의 여의주를 갖게 되기를. 작은 희망이라도 보듬고 꿈꿀 수 있는, 희망을 희망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탐욕보다는 나누는 기쁨으로 함께 소통하며 살아가는 세상이 되기를 꿈꿉니다.
권지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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