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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타고라스

namsarang 2012. 3. 31. 23:47

[이만근 교수와 함께 수학의 고향을 찾아서]

<1> 피타고라스

기사입력 2012-03-31 03:00

 
 
“동물로 환생할 수 있다” 믿은 수학의 아버지, 평생 채식 고집

그리스 에게 해 사모스 섬 피타고라스의 고향인 피타고리온 항구에 세워져 있는 직각삼 각형 조각상. 왼손에 삼각자를 든 피타고라스가 하늘을 보며 ‘숫자’의 진리를 추구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위 사진). 사모스 섬의 기념품 가게에는 ‘피타고라스 조각상’을 넣은 다양한 제품이 진열대를 가득 메우고 있다. 사모스=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 ‘수(數)는 우주의 중심이다.’ 30일 그리스 사모스 섬의 항구도시인 피타고리온. 직각삼각형의 한 변에 한 남자가 서 있는 모습의 조각상이 눈부시게 빛나는 에게 해를 바라보고 있다. 조각상 속의 남자는 고대 그리스 전통의상인 ‘히토니오’를 입은 채 삼각자를 들고 하늘을 응시하고 있다. 바로 그가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제곱은 다른 두 변의 제곱의 합과 같다’는 ‘피타고라스의 원리’로 널리 알려진 ‘수학의 아버지’ 피타고라스(기원전 580∼기원전 496년)다. 》

조각상 속 피타고라스의 눈빛은 ‘수의 원리’를 통해 우주의 비밀을 찾으려 평생을 바친 고대 수학자의 열정과 갈망을 잘 보여주고 있다.

‘피타고라스의 원리’가 태어난 곳을 찾아가는 여정은 멀고도 멀었다. 그리스 수도 아테네에서 하루 한 차례 왕복 운항하는 쌍발기를 타고 1시간가량 동쪽 터키 방향으로 가니 사모스 섬에 닿았다. 면적 약 472km²의 사모스 섬은 터키와 가장 가까운 그리스 섬으로 섬과 터키 사이에 가장 좁은 사모스 해협은 폭이 1.6km에 불과하다.

사모스는 제우스의 부인 헤라가 태어난 곳으로 헤라 신전이 있다. 지금은 휴양지로 변했지만 기원전 6세기에는 지중해에서 가장 발달한 지역으로 해상교통의 중심지였다. 사모스 섬 고고학 박물관에서는 그리스 아테네나 펠레폰네소스에 못지않은 문명을 이뤘던 모습을 볼 수 있다.

섬의 동남쪽에 피타고라스의 고향인 피타고리온이 있다. 항구에 있는 조각상에는 그의 철학을 대변하는 문구들이 새겨져 있다. ‘우주는 무한하다’ ‘자연은 논리에 따라 작용한다’ ‘우주는 조화롭게 움직인다’ ‘자연은 전 우주를 통해 어디나 같다’ ‘수는 우주의 중심이다’….

미국 캐나다 그리스의 대학들이 돈을 모아 10년 전 세운 이 조각상의 기단 서쪽 벽에는 한 그리스 시인이 피타고라스에게 바치는 헌시 ‘피타고라스에게 구름이 열리고, 우주가 조화롭다는 것을 보이게 하소서’가 새겨져 있다.

피타고라스에게 수학과 철학은 한몸뚱이였다. 그는 자연과 수가 논리 정연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우주와 인간 세상도 그렇게 움직인다고 믿고, 때로는 수학자의 엄밀함으로 증명해 보이기도 했다.

그의 사상은 피타고라스 사후 70여 년 뒤 태어난 후배 철학자 플라톤의 ‘이상 국가론’ 등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19세기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논증했다. 플라톤의 이상국가에 사는 시민들의 원형을 피타고라스가 그렸던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피타고라스 정리’ 등은 유클리드에 의해 집대성된 후 약 2000년간 세계 수학계를 제패한 ‘유클리드 기하학’의 토대가 됐다.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환경에서 살았던 피타고라스는 자신의 정리를 증명했을 때 사모스 섬의 제자와 주민들에게 암소 100마리를 잡아 잔치를 벌였으며 주민들은 ‘암소 100마리 정리’라는 별명도 붙여주었다고 한다. 피타고라스는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현재 쓰이는 음계의 기초를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음악은 영혼의 정화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주는 조화롭다’ 등 피타고라스의 믿음은 종교적 신념이나 마찬가지여서 그를 따르던 ‘피타고리안’들은 신도에 가까웠다. 피타고라스는 자신이 트로이의 한 영웅이 환생한 것이라고 여기는 등 ‘윤회’를 믿었다. 인간과 동물은 모두 영혼을 갖고 있으며 죽은 후에는 다른 사람이나 동물의 몸으로 옮겨갈 수 있다(transmigration)’고 믿어 육식을 일절 하지 않는 채식주의자로 평생을 살았다.

그의 믿음 중에는 기이한 것도 적지 않다. ‘성행위는 여름 아닌 겨울에 해야 한다’ ‘모든 병은 소화불량에서 비롯된다’ ‘모피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있다. 특히 콩을 먹으면 방귀를 너무 뀌고, 콩의 모양이 여성의 성기와 닮았다며 먹지 않았다는 이른바 ‘콩 금기’는 그의 미스터리 같은 죽음과도 연결된다.

피타고라스는 사모스 섬에서 ‘하프 서클(반원)’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학당을 열어 학생들을 가르쳤다. 사모스의 독재자 폴리크라테스와의 갈등으로 이탈리아 크로토네로 옮겨온 후 후학 양성과 정치 활동에도 관여했다. 크로토네에서 그의 교육 철학에 맞지 않아 학당 출입이 허락되지 않는 사람이 적지 않았던 게 결국 화를 불렀다. 어느 날 학당 입학 금지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학당을 습격해 불을 지르고 살육을 자행했다. 도망가던 피타고라스가 콩밭을 만났으나 “콩밭을 건너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며 피살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온다고 이만근 교수(동양대 수학과)는 말했다.

피타고리온은 중세 이후 이탈리아어로 ‘창고’라는 뜻의 ‘티가니’로 불렸으나 1956년 피타고라스를 기리고 섬의 관광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피타고리온으로 바뀌었다. 199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됐다. 1983년 설립된 에게대는 레스보스 섬에 있으나 수학과는 사모스 섬에 개설됐다. 그리스 본토와 에게 해의 여러 섬 출신 200여 명의 학생이 입학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에게대 수학과 안토니스 솔로미티스 교수(45)는 “피타고라스의 고향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것에 자부심과 숙연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모스 섬 토박이로 20여 년째 식당을 운영 중인 니코스 보지아지스 씨(58)는 “수학자라면 누구나 사모스 섬에 한 번은 왔다 가야 할 만큼 역사성이 있는 곳”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11세 때 미국에 건너갔다 지난해 고향 사모스로 돌아왔다는 주민 술라 빈 씨(54)는 “미국에서도 대부분의 사람이 피타고라스를 알고 있어 항상 고향을 자랑하고 다녔다. 비록 지금 사모스는 행정이 투명하지 못하고 경제 침체의 그림자도 짙지만, 인류 수학 문명의 위대한 발상지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사모스=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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