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석 신부(전주교구 신풍본당 주임)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유다인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두려움에 떠는 제자들 가운데 오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구약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받은 계율이다. 그분께서는 직접 유다민족을 다스리셨다. 신약에서는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인간 세상에 오시어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신 후 10일 만에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셨다. 이것은 이미 예수께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다른 협조자를 보내주셔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계시도록 하실 것이다. 그분은 곧 진리의 성령이시다"하고 약속하신 일이다.
유복한 가정에서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사람이 있었다. 그는 16살 때 부모를 잃고 자신의 삶마저 포기한 채 동생 5명을 부양해야 했다. 다니던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식당에서 접시를 닦고 잔심부름을 해가며 돈을 벌어 동생들 학업을 뒷바라지하는 데 전념했다. 그는 동생들에게 아버지요 어머니며 오빠이고 언니였다. 동생들은 그의 희생과 사랑으로 훌륭한 사회인이 됐다.
장남은 부모에 대한 기억과 동생들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 앞에 놓인 온갖 어려움을 극복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동생들에게 내어주는 성숙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소설가이자 시인인 빅토르 위고는 "하느님께 올라가는 길은 자신에게 내려가는 것이다"하고 말했다. 이처럼 사랑의 삶을 살려면 자신을 내려놔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자신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를 끊임없이 내어주며 스스로를 뒤돌아보고 살아야 한다.
단단한 껍질 속에 든 한 알의 보잘것없는 씨앗에 수분과 공기와 햇빛이 공급되면 새로운 생명이 움터 나온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한 알의 씨앗과 같다. 사는 것이 힘들고 때로는 절망과 좌절에 빠져도 성령을 만나면 공기와 햇빛과 수분을 만난 듯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성령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으며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 유다인이 무서워 다락방에 숨어있던 제자들은 성령강림 후 두려움 없이 군중 앞에서 설교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하느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는지, 또 무엇 때문에 십자가형을 받으시고 참혹하게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는지 깨닫게 됐다. 그리고 제자들은 전 인류에게 자신들이 깨달은 진리를 전해야 하는 사명을 받았음을 인식하게 됐다.
성령께서는 믿는 이들을 일치시키는 사랑을 계속 베풀어주심으로써 당신 현존을 드러내셨다. 또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이들이 모두 오순절 사도들의 설교를 알아들을 수 있게 하셨다. 인종과 언어, 문화가 다른 세상으로 복음이 퍼져나가게 하신 것이다(사도 2,6-11 참조).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 하나하나는 예수님 부활을 전해야 하는 복음의 표징이다. 용서와 사랑의 삶으로 이 상징이 세상에 드러나게 해야 한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며 믿는 이들을 형제자매로 받아들여 친교를 맺는다. 교회 안에서 사랑과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인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것은 한순간뿐이나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이다. 우리는 가시적 현세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영원에 희망을 둬야 한다. 성령의 도움을 받아 이웃에게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복음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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