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석 신부(전주교구 신풍본당 주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서로 사랑하여라"하고 말씀하신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이고 명령이다. 복음의 핵심이 사랑이며 하느님의 본질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박상선이라는 나이 지긋한 백정이 장터에서 푸줏간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젊은 양반 두 사람이 고기를 사러 왔다. 한 양반은 "상선아, 고기 한 근 다오"하고 말했다. 백정은 "그러지요"하고 답하며 솜씨 좋게 칼로 고기를 베어주었다. 함께 온 다른 양반은 상대가 비록 천한 신분이지만 나이 든 사람에게 말을 함부로 하기가 거북했다. 그래서 "박 서방, 여기 고기 한 근 주시게"하고 말했다. 그런데 먼저 고기를 산 양반이 보니 나중에 담은 고기가 자기 것보다 갑절은 돼 보였다. 그 양반은 화가 나서 "이놈아, 같은 한 근인데 어째서 이 사람 것은 크고 내 것은 작으냐?"하고 따졌다. 그러자 백정은 "그야 손님 고기는 '상선'이가 자른 것이고, 이 어르신 고기는 '박 서방'이 잘랐으니까요"하고 대답했다.
인간의 말과 행위는 자신의 영혼이 어떤 상태인가를 드러내는 표지이다. 남의 인격을 표현하는 언행에서 자신의 인품도 드러나게 마련이다.
인간은 하느님을 닮은 성품, 즉 인격을 선물로 받고 태어났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사람으로서 가치를 갖는 데 필요한 인격을 소유하고 타인을 인격자로 대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인격적 존재로 대접받을 때 행복하며 사랑을 느낀다.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자들은 온갖 질병과 고통과 악령에 시달리는 사람이었다. 버림받은 여인과 세리, 죄인 등 소외되고 인격적으로 멸시받는 자들이었다.
인간 내면에는 남을 지배하려는 사자 같은 마음과 남을 속이고 사욕을 채우려는 여우 같은 마음 등 온갖 동물의 속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 마음 안에 내재한 하느님 모상을 존중함으로써 사랑으로 성화시켜 그들의 인격을 회복해 주셨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하고 말씀하셨다.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는 행위는 단순한 자선을 뜻하는 게 아니다. 무시 당해서도 짓밟혀서도 안 될 하느님 형상인 신성을 그들 안에서 발견하고 그들을 인격적으로 사랑하라는 말이다. 세상 사람들 눈에 하찮게 보이는 보잘것없는 자들이 만물의 근원이며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그 당시 빈민층에 속하는 어부들을 당신 제자로 만드시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하고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우리를 인격자로 사랑하듯이, 우리 또한 서로를 인격체로 사랑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상은 물질이 인간의 존엄한 가치보다 위에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른바 '사'자 붙은 직업을 가진 배우자를 구하기 위해 아파트와 고급 승용차, 별장 등 수억 또는 수십억 재물이 요구되는 웃지못할 촌극이 벌어진다. 배우자를 돈으로 사는 것이고, 배우자가 돈에 팔려가는 셈이니 신종 인신매매로 볼 수 있다.
혼인은 하느님의 진실하고 순수한 사랑이 가장 이상적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중대사다. 스스로 엄청난 금전을 내고 종노릇을 자처하거나 반대로 돈에 현혹돼 종살이를 자처하는 자들이 이런 혼인생활을 심각하게 오염시키고 있다. 자기보다 뛰어난 상대는 사랑해야 할 반려자가 아니라 주종 관계가 되기 쉽다. 우리는 때로 명성과 인격을 혼동한다. 명성은 어떤 사람에 대한 외적 소리이지만, 인격은 인간이 자신 안에 갖추고 있는 하느님 모습, 곧 사랑이다. 그러기에 이웃을 외형에 따라 평가하지 말고 인간 존재 그 자체를 존중하여 인격적으로 대접해야 한다.
그럴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는 말씀을 올바르게 실행하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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