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교황(敎皇)인가 교종(敎宗)인가

namsarang 2013. 6. 29. 23:25

[생활속의 복음]

 

교황(敎皇)인가 교종(敎宗)인가

 

연중 제13주일ㆍ교황주일(루카 9,51-62)

연중 제13주일이자 교황주일이다. 예수님으로부터 수위권을 부여 받아 베드로 좌를 이어받은 이들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가 이즈음의 화두다. 교회 언론에서는 각 언론지, 각 논객마다 교황(敎皇)이 맞느니 교종(敎宗)이 맞느니 한다. 교회 언론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각 사제들마다 미사를 집전할 때, 성찬례의 전구 부분인 "주님, 온 세상에 널리 퍼져있는 교회를 생각하시어 교황 ○○와 저희 주교 ○○"에서 어떤 사제는 교황이라 하고 또 어떤 사제는 교종이라고 호칭한다. 그러니 당연히 신자들로서는 헷갈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렇다면 우리 선조 신앙인들은 베드로 후계자를 어떻게 불렀을까? 「천주실의」 「황사영 백서」 등 한역 서학서나 초대교회 지도자들 저술 속에는 백성을 주님께로 이끌어 감화시키는 자라는 의미에서 교화황(敎化皇) 혹은 교황이라 했고, 또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교리를 세상에서 주관하는 자라는 의미에서 주교자(主敎者)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1850년 중반 이후로 오면, 많은 척사론자가 저마다 다양하게 자신들의 척사론(斥邪論)을 저술해 발표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저술에서 교황과 교종을 혼용한다. 이는 교황을 교종으로 비하하려는 모종의 시도의 한 형태로 보인다.

 1873년 병인박해가 종식된 후, 오랜 박해의 영향 때문인지 교회 안에서마저도 각종 기도문이나 교리서 등에서 교황과 교종을 혼용해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주교회의 결정에 따라 각종 전례서나 교리서에 공식적 칭호로서 교황을 채택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현대 중국학자들 저술 속에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교화황이나 교황이라는 호칭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교종으로 칭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일본은 현재에도 교황과 법왕(法王)이라는 호칭을 혼용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19세기 척사론자들이나 현대 중국학자들과 일본학자들은 교화황 또는 교황이라는 호칭을 의도적으로 폄하하기 위함이 역력해 보인다. 더욱이 박해종식 이후에는 한국교회에서마저도 교황과 교종을 혼용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사실 현대 한국 천주교회가 베드로 좌를 교황으로 공식 호칭을 부여하고 있음에도, 최근에 또다시 민족의 독자성 또는 겸손의 표현이라 하면서 교황을 교종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은 의미상으로나 역사적으로 볼 때,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최근 교황은 반(反) 복음적이고 교종은 복음적이라든가, 혹은 교황은 권위주의적이고 교종은 겸손을 지향하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거나 또는 교황은 반민족적이고 교종은 민족적 자긍심을 일깨워 준다고 말하는 것은 신앙선조들의 신앙 정신과도 맞지 않는다. 또 황(皇)과 종(宗)이라는 개념의 실제 의미와도 맞지 않는다. 사실 교화황 혹은 교황은 백성을 교화한다는 의미로,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양들 잘 돌보아라"(요한 21,16),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9)라고 하심으로써 당시의 세 가지 직분 곧 왕직ㆍ예언직ㆍ사제직을 넘겨주시고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중재자 역할을 맡기셨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교종은 원래 단순히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대표로서 해야 할 역할, 즉 단순히 제사장의 의미 곧 "모든 대사제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뽑혀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하도록 지정된 사람들입니다"(히브 5,1)라는 뜻만 강조될 뿐, 그리스도 삼직과는 일정 정도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교황주일을 맞아 새삼 예수님으로부터 수위권을 부여 받은 베드로 좌를 이어받은 이들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를 따지는 것은 오늘날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는 무익하다. 이미 주교회의는 교황이라는 공식호칭을 사용하고 있으며, 더 중요한 것은 교황과 더불어 세계의 모든 하느님의 백성이 모두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마태 7,21)이 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황은 어느 나라 식이고 교종은 또 어느 나라 표현이라는 등을 따지지 말고, 오히려 교황께서 주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교도권을 가지고서 자꾸만 반(反) 하느님으로 기울어가는 세상을 잘 교화(敎化) 혹은 교도(敎導)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함께 마음을 모으는 교회 공동체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교황주일을 보내는 믿음의 공동체 구성원들 마음가짐과 삶의 태도가 아니겠는가?
▲ 신대원 신부 (안동교회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