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2주일 (마태 18,19ㄴ-22) 연중 제12주일이면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는 날이다. 우리는 35년 동안이나 일본제국에 나라를 통째로 빼앗겼었다. 그러다가 겨우 나라를 되찾자마자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갈라져서는 같은 민족끼리 피비린내 나도록 처절한 전쟁을 치렀다. 전쟁이 끝나고서도 허리가 두 동강 난 상태에서 60년이 넘도록 여전히 서로서로 용서해주지 못하고 주적(主敵)으로 삼아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이 땅에 서로가 하나돼 참 평화를 일구면서 살아도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처해나가기 그리 만만치 않은데, 서로 찢기고 터지도록 싸우며 불목하고 있으니 갈수록 걱정이 태산처럼 쌓여간다.
그동안 양쪽의 위정자들은 위정자대로 입만 열면 평화통일을 운운했고, 교회는 교회대로 '갈라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자고 주창했다. 하지만 평화통일의 염원은 점점 멀어져만 가는 듯하고, 민족의 화해와 일치는 요원해 보인다. 북쪽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러한 대의(大義)에 대해 남쪽만이라도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전향적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데, 최근 몇 년간 대북 추이를 살펴보면 평화랄지 화해와 일치랄지 하는 구호들은 단지 머릿속 개념이나 공염불에 다름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 때문에 남쪽에서는 '남-남'이라는 새로운 갈등구조가 뿌리 깊게 내릴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갈라진 민족이 하나로 만나 대화하면서 화해할 것이 있으면 화해하고, 용서할 것이 있으면 서로 용서하면서 함께 평화의 길로 나아가는데, 거기에 이념이니 사상이니 하는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거기에 과거지사가 무슨 대수이겠는가? 단순히 원수로 여기려는 핑계거리나 원한을 조장하려는 수단거리로 삼으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거기에 매달려 진작부터 만나야 할 흩어진 가족들마저 만날 수 없게 만들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겨레 분단, 대화 단절 등의 책임을 전가하고 상대방에게 원색적 비난만을 일삼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랑이시며 참 평화이신 예수께서는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지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마태 18,19)라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렇게 서로 마음을 모으지 못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마음을 모아 민족의 평화를 위해,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선 서로가 서로에 대해 믿음이 없어서가 아닐까? 믿음이 없으니 만날 수 없고,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대화할 여지도 없게 되고, 대화할 여지가 없어서 용서해 줄 마음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베드로가 예수께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마태 18,21)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고 말씀하신다.
결국, 갈라진 남과 북이 하나 되는 길은 용서의 문제가 전제돼야 한다. 서로를 용서해 줄 의향이 있다면, 이유 불문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무조건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화해의 손길이 맞닿으면 손을 맞잡을 수 있고, 손을 맞잡게 되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 믿음이 싹트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이루기 위해 위정자들이 나설 의향이 없다면 교회라도 나서야 한다. 기도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실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주님이신 예수께서는 우리와 하나 되시기 위해 오셨고, 또 갈라진 온갖 것들이 하느님 안에서 '하나됨을 위하여' 사셨기 때문이다.
갈라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는 오늘, 사도 바오로 말씀이 심금을 울린다.
"하느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속량의 날을 위하여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에페 4,30-5,2).
그렇다. 이러한 말씀을 우리가 모두 가슴 깊이 새기면서 살아간다면, 갈라진 우리 민족의 화해와 일치문제도 새로운 희망으로 움터올 것이다.
| ▲ 신대원 신부 (안동교회사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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