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루카 9,11ㄴ-17)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이다. 참 하느님이시면서 사람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 분께서 당신의 거룩한 몸과 피를 생명의 음식으로 건네주신 것을 기념하는 주일이다. 생명의 음식은 뭇 생명을 살리는 양식, 곧 밥과 음료다. 누군가가 다른 이들을 살리기 위해 밥과 음료로써 자신의 몸과 피를 음식으로 내어놓았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가 살신성인(殺身成仁)했다고 말한다. 그만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은 태어나자마자 죽음으로 향해 방향 지어진 우리를 위해 당신을 생명의 음식으로 삼아 남김없이 내어놓은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이 기념은 곧 우리에게는 그대로 경축(慶祝)이자 은총이다.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수난 전날 그토록 원하셨던 이별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하셨다(루카 22,15). 그 자리에서 제자들 발을 씻겨주시면서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라"(요한 13,15)하고 당부하신다. 그리고는 만찬을 나누는 과정에서 빵과 술을 가지고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몸'과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라고 하시며 "이것을 나누어 마셔라"(루카 22,14-20)고 하시면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다.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와 함께 나누심은 우리를 살리기 위함인 동시에 곧 닥쳐 올 당신의 참혹한 죽음의 제사다. 이것은 우리를 살리기 위한 당신의 거룩하신 몸과 피의 희생적 내어 놓으심이며, 이 내어 놓으심은 곧 생명의 나눔이다. 생명의 나눔은 사랑이 없으면 절대 불가능하고, 사랑은 상대방을 섬기는 태도에서 비롯된 '자기 바침'이다.
자기 바침은 나눔과 섬김을 통해 생명을 새롭게 하는 진통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다. 이 행위가 곧 십자가를 짊이다. 따라서 성체성사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는 말씀을 외면해 버리고서는 절대 이뤄질 수 없다. 이것이 곧 주님께서 마련해주신 이별 만찬이요 십자가의 제사, 곧 미사성제다.
미사성제는 거룩하신 주님 부르심에 참여하여 그분의 거룩하신 말씀을 듣고, 거룩하신 몸과 피를 나눠 먹고 마시면서 그분과 함께하는 십자가의 제사인 동시에 생명의 잔치다. 그럼에도 지금 세상은 어떠한가? 그리고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생명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나누어 주며 타자를 제대로 섬기고 있는가? 주님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18,36)고 말씀하신다.
지금 세상은 약자들을 제 밥으로 삼는 세상이며, 강자들이 모두 제 밥그릇 챙기기에 혈안이 된 세상이다. 자기 생명은 살리고 남의 생명은 철저하게 짓밟고 빼앗는 세상이다. 입만 열면 죽이는 말을 하고, 죽이는 말이 판을 치게 두는 것을 용인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 주님께서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살리시려고 먹혀버릴 양식으로 오셨고, 이런 세상에 모두를 살리는 말씀으로 오셨고 사셨다. 미사성제는 곧 '밥도 먹고 말도 하는' 생명의 잔치이자 사랑의 잔치, 평화의 잔치다.
오늘 복음에서도 먹힐 생명의 양식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 세상을 살리는 당신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든 백성을 가엾이 여기시면서 제자들을 향해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루카 9,13) 하고 명령하신다. 사람에게 먹는 것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기본적이다. 입을 것과 잠잘 곳보다 먼저다. 이는 누군가에게 빼앗길 수도 없고 누군가로부터 빼앗아 갈 수도 없는 특권이다. 음식으로 오신 분(요한 6,35)이 그 음식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도록 제자들에게 맡기신다. 일하는 일꾼들에게 맡기신다. 당신의 교회 공동체에 맡기시는 것이다.
조선 시대 「춘향전」의 백미는 이몽룡이 변학도 생일잔치에 끼어들어 일필휘지로 판을 뒤엎는 대목이다. "금잔의 좋은 술은 만백성의 피요, 옥쟁반의 기름진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을 짠 것, 촛농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이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드높다(金樽美酒千人血, 玉盤佳肴萬姓膏, 燭淚落時民淚落, 歌聲高處怨聲高)."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백성 고혈을 빨아 푸지게 먹고 마시던 각 고을 벼슬아치들은 암행어사의 추상같은 꾸짖음에 혼비백산해 도망치기에 바빴다.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매일 미사를 드릴 때마다, 그리고 그 미사에서 주님의 몸과 피를 나눠 모실 때마다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우리를 위해 당신의 말씀은 물론 몸과 피를 나누고 바치신 그분의 뜻에 함께할 것을 다짐해 본다. 교회 공동체는 성체성사이신 분의 몸이기에 마땅히 그분을 따라 삶의 자리, 역사 현장에서 그분 삶을 몸소 사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하느님 백성인 우리는 현실의 슬픔과 아픔을 외면하고 도피하는 집단이 아니라 그 출발부터 현실 안으로, 그 역사의 현장으로 파견된 성체성사를 사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 ▲ 신대원 신부 (안동교회사연구소 소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