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삼위일체 대축일 (요한 16,12-15)

namsarang 2013. 5. 26. 19:59
 

[생활속의 복음]

 

삼위일체 대축일 (요한 16,12-15)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우리 하느님은 삼위일체이신 분이라고 온 몸으로 고백하는 삼위일체 대축일이다. 하느님은 삼위일체이신 분이라고, 사람이 되신 아드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 참 하느님이면서 세상에 오시고 사시고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부활하시어 영원히 우리 가운데 계신 아드님께서는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9-20)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을 삼위일체이신 분이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됐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계시하신 대로 거룩하신 아버지(성부)와 거룩하신 아드님(성자)과 거룩하신 영(성령)께서 본체(本體)로서 한 분이시다. 아버지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거룩하신 그분의 영께서 함께 하셨고(창세 1,1), 아드님께서는 하늘과 땅이 생기기 전에 하느님과 영과 함께 계셨다(요한 1,1). 또한 아드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보내신 거룩한 영으로 말미암아 사람으로 오셨고(마태 1,20), 아드님께서는 아버지와 하나이셨다(요한 10,30).

 성령께서는 아버지와 아드님으로부터 파견되셨으니, 아버지와 아드님과 더불어 흠숭을 받으셔야 할 분이다.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요한 14,9-11) 하고 말씀하신다.

 또 아드님께서는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요한 16,13-15)라고 힘주어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아드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모두 참되다. 왜냐하면 그분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신 분이시고, 또 그분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으며, 아버지와 아드님께서 함께 보내주신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마태 12,32)이기 때문이다.

 주님이 삼위일체이신 분이라는 이 고백은 인간 이성으로는 알아듣기 힘들다. 한 분이시며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분이 어떻게 삼위(三位)가 되시는가? 사실 위(位)는 자리, 역할을 뜻한다. 그래서 그분은 본체(本體), 본성(本性)으로는 한 분이시지만 결코 어느 위가 또 다른 위를 창조하거나 창조되지 않으시고, 세상을 창조하실 때나 구원활동을 하실 때 온전히 똑같이 동시에 계획하고 진행하는 분이시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아드님과 거룩하신 영께서는 한 몸이시기 때문에 나뉠 수도 없고, 구별하거나 혼동될 수도 없는 분이시다. 그 때문에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통해 성령 안에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기르시고 일으켜주신다고 고백해야 한다. 마치 하느님 백성은 여럿이지만 한 분이신 하느님 안에서 모두 하나인 것과 같다.

 사도 바오로는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로마 5,1)라고 고백하면서 또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분이십니다. 주님도 한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에페 4,4-6)라고 선포한다.

 그러므로 삼위일체이신 분께서는 공동체의 하느님이시다. 공동체는 사랑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이뤄질 수 없다. 사랑은 홀로 혹은 독단적으로 이뤄지는 그 무엇이 아니라 오로지 너와 내가 함께 하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곧 하느님은 사랑(1요한 4,16)이시기 때문에 교회 공동체도 사랑의 공동체여야 하고, 또 누구든지 사랑의 공동체를 산다면 그는 이미 삼위일체이신 분의 자녀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아드님께서도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요한 17,32)라고 하셨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야"(에페 2,18)하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닮아 사랑과 믿음과 희망의 공동체여야 하고,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넘치는 공동체여야 한다. 생명과 진리이신 하느님 안에서 끊임없이 나누고 섬기는 공동체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교회는 그저 개인의 위로와 구원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이고 반 하느님적 집단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 교회 공동체는 먼저 다양성 안의 일치와 일치 안에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추구해야만 한다. 사도 바오로는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1코린 12,4-7)라고 고백한다.

 오늘은 또한 청소년주일이다. 미래 주역인 청소년들에게도 교회 공동체는 삼위일체이신 분을 닮아 이 땅에 역사하신 그분의 모든 것을 온 몸으로 보여주는 사명을 가져야 한다. 하느님과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 신대원 신부 (안동교회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