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5주일 (루카 10,25-37) 연중 제15주일이다. 사람들은 흔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은 '사랑'이라는 단어라고 말한다. 그만큼 사랑은 사람살이에 있어서 핵심관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참된 사랑을 갈구하지만, 사람과 사람살이에 있어서 모든 책임과 의무 또한 사랑에서 나온다는 것을 종종 간과하는 것 같다. 깊이 통찰하지 않으면 사랑은 그저 허무하기 그지없는 욕망에 다름 아니다. 사랑은 인간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욕망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릴 수 있는 바탕이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교사와 주님 사이의 질의응답이 사뭇 가슴을 찌른다. 율법교사는 주님을 시험해보려고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루카 10,25)라고 애매하게 질문한다. 영원한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신 하느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은총인데, 이 과정 안에서 인간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따지는 물음이다.
주님께서는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루카 10,26) 하고 되물으신다. 그러자 율법교사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한다고 하였습니다"(루카 10,27)라고 대답한다. 주님께서는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루카 10,28) 하고 말씀하신다.
사실 사랑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나라 사랑, 친구 사랑, 일 사랑, 부모자식 사랑, 이웃 사랑, 가족 사랑, 하느님 사랑, 이성 간의 사랑 등이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하게 드러나는 모든 형태의 사랑은 결국 하나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랑은 그 자체로 무한성과 영원성을 담보로 하는 지워질 수 없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남녀 간의 사랑일지라도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 사랑은 진실한 것이고 자신을 낮추는 행위이며, 자유로운 내적충동으로 말미암은 참된 고백이기에 그 자체로 숭고하고 거룩하게 된다. 누가 만일 사랑한다고 약속했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는 거짓말쟁이고 진실을 쉽게 왜곡하는 사기꾼이 된다.
사랑의 형태는 삶의 조건에 따라 여러 가지로 드러날 수 있지만, 모든 생명이 하느님에게서 흘러나오듯 사랑도 근본적으로 하느님에게서 나온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1요한 4,16) 때문이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하는 것"(1요한 4,21)이다.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그 사랑은 믿음에서 출발하고, 그 믿음은 사랑을 낳으며, 사랑은 정의와 평화를 낳고, 정의와 평화는 사람을 살리는 원동력이 된다. 사랑은 다른 사람을 살리고 일으키는 원천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사랑의 삶을 살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29-35)로 사랑의 삶을 사는 이들 삶의 태도를 가르쳐주신다. 사랑이신 분의 말씀에 따르면 사랑의 삶은 이웃, 그중에서도 특히 어렵고 힘들게 사는 이들을 우선적으로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삶이다. 그리고 사랑의 삶은 이웃에 대해 참고 기다리며, 친절하고,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고, 교만하지 않으며, 무례하지도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도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도 않는 삶이다. 또 사랑의 삶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기뻐하며,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뎌내는 삶이다(1코린 13,4-7).
주님께서는 율법교사와의 대화에서 평소 성경을 통해 주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우리에게 그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삶으로 살아야 하는가를 자세하게 들려주신다. 율법교사는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었느냐?"는 주님의 물으심에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주님께서는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고 말씀하신다.
지금 우리는 사랑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렇다면 "진리를 보고 기뻐"(1코린 13,6)하는가? 진리 혹은 진실이 없다면 사랑은 단순히 즉흥적 감상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는 사랑의 삶을 살고 있는가? 그렇다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그러므로 진리 안의 사랑은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얼굴이 되는 것이고, 당신 계획 안에서 형제와 자매를 사랑하라는 부르심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스도 바로 그분이 진리이시고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 ▲ 신대원 신부 (안동교회사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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