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7주일 (루카 11,1-13) 예수님께서는 어떤 제자가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루카 11,1)라고 청하자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루카 11,2)고 하시며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신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가 바로 우리가 늘 언제나 어디서나 즐겨 드리는 '주님의 기도'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고,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며, 잘못한 모든 이를 용서하니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주십사(루카 11,2-4) 하는 비교적 단순하면서도 부자관계의 신뢰가 가득히 밴 내용이다.
기도(祈禱)란 글자 모습대로 제단 앞에서 두 손을 도끼날처럼 모으고 자기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진실하고 간절하게 제단이신 분과 대화를 나누는 행위다. 제단이신 분은 곧 하느님 아버지시다.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이기에 기도는 근본적으로 참되고 올발라야 한다. 또 기도가 대화이기에 말하기와 듣기가 함께 가야 한다. 자기 말만 하면 독선(獨善)과 독재(獨裁)가 될 수 있고, 듣기만 하면 무관심과 굴종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드리는 기도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는 듯하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자기 속마음을 진솔하게 털어놓지 않고 그저 교회가 공식적으로 선포하거나 공동전례 안에서 사용하는 기도문만을 앵무새, 녹음기처럼 되풀이하는 것을 참된 기도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한 태도가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렇게 된다면 하느님과의 대화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겠는가?
또 하느님과 진실한 대화를 이뤄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사욕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진실하신 하느님을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솔직한 자신의 심경을 하느님께 말씀드리고, 하느님의 진실하신 말씀을 들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올바른 기도에 대해 "너희는 기도할 때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 하지마라"(마태 6,5-7). 또 "끊임없이 간청하여라"(루카 11,5-8),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루카 11,9)라고 하시며 기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신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이긴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모두 알고 계신다(마태 6,8)는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이다.
한편 기도는 삶의 현장에서 하느님과의 대화이기 때문에 결코 현실을 외면한 기도를 드려서는 안 된다. 자신의 현실, 주변의 현실적 환경,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외면하거나 현실을 왜곡시키면서까지 드리는 기도는 진실한 대화가 아니라 거짓말쟁이, 사기꾼이 하는 수법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기도는 행동을 전제로 해야 한다. 행동 없이 말만 그럴듯하게 늘어놓거나, 자신은 손끝하나 움직이지 않고 대신 해결해달라고만 하거나, 남의 목소리를 흉내만 내는 기도는 전형적인 이기적인 위선자들의 행태에 다름 아니다.
사실상 대화란 마음을 비우고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솔직한 목소리를 상대방에게 들려주는 행위다. 하물며 하느님과의 대화인 기도는 또 어떠하랴. 마음을 비우고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하느님께 자신의 솔직한 삶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이 참된 기도가 아니겠는가? 마음을 비우고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결코 자신의 억지스러운 욕심을 부리지 않고 하느님의 이름과 나라와 일을 먼저 생각할 것이다.
또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사람이라면, 그는 결코 헛된 욕망을 바라지 않고 오직 "일용할 양식"(루카 11,3)만을 바랄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과 진실한 대화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먼저 이웃의 어려운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우는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려는 노력부터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기도는 나와 너, 세상과 자연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섬기는 일이며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온갖 것들과 사귀고 어울려서 함께 살고자 하는 행위다. 기도는, 오시고 사시고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부활하시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온몸으로 살고자 애쓰는 구체적 행위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 신대원 신부 (안동교회사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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