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9주일 (루카 12,32-48) 연중 제19주일이다. 이즈음 언론매체들이 전하는 소식들을 접하노라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가늠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어제의 문제가 오늘은 별 문제가 없어 보이고, 오늘 별 문제가 없던 것이 하룻밤이 지나면 커다란 문제로 뒤바뀌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즈음의 세태는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혼란하고 또 혼탁해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리라.
예수님께서는 이를 두고 "그러니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루카 7,31-32)라고 한탄하시며 장터에 앉아 어지러운 세태를 노래하는 아이들과 같다고 하신다. 지난 주일에 예수님께서는 "탐욕을 조심하고 경계하라"(루카 12,15)고 하시더니, 오늘은 '충실과 불충실'에 대해 비유 말씀으로 가르치신다.
사실 충실과 불충실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충실(充實)이란 열매가 허실(虛實) 없이 꽉 찬 상태를 말하고 불충실(不充實)이란 열매가 맺긴 했지만 빈 쭉정이라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충실(忠實)이라는 것인데, 충직하고 성실하다는 뜻이며, 불충실(不忠實)이란 충직하지도 성실하지도 않다는 말이다. 이 두 가지 의미는 결국 뜻이 똑같다. 충실은 사람으로 해야 할 도리를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고, 불충실은 탐욕이나 허영, 기만이나 사기 같은 처세술에 능하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충실하려면 몇 가지 사실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첫째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루카 12,33). 둘째는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루카 12,35). 셋째는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12,40).
가진 것이란 재물은 물론이고 지식과 마음 태도까지도 포함된다. 재물을 가진 사람은 재물이 없는 사람과 나누고, 지식을 가진 사람은 지식이 부족한 사람과 나누며, 마음이 넉넉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배려할 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총애를 받든지 수모를 당하든지 거기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고, 언제나 주님께서 부르시면 따를 수 있도록 준비하는 사람만이 진실로 충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현실은 안타깝다. 재물을 가진 사람은 재물을 가진 사람대로, 지식을 가진 사람은 지식을 가진 사람대로 그렇지 못한 이웃과 나눌 생각은 하지 않고 저마다 자신들의 안위와 영달을 꿈꾸며 더 많은 탐욕을 일삼고 있으니 개탄할 일이 아닌가.
최근 어느 연구소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종교에 귀의한 자든 아니든 현실적으로 인생에서 가장 의지할 만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1위가 돈, 2위가 권력이나 학벌, 3위가 신(神)이라는 응답이 나왔다. 그만큼 돈이나 권력 등 세속적 힘을 얼마만큼 가졌느냐에 따라 삶의 성공도가 판가름 나고, 그 성공도에 따라 삶의 충실도가 정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어 씁쓸해하지 않을 수 없다. 가지지 못한 자들은 결국 충직하지도 성실하지도 못하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힘없는 자들은 현실에서 도태되고 말아야 할 대상자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어떠한가. 한 조사에 근거하면, 가톨릭 신자들 역시 겉으로는 하느님께 충실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심으로는 돈이나 권력, 명예 따위를 하느님보다 우선순위에 놓고 있다. 하느님과 세상의 것을 저울질하다가 결국 최종적으로는 세상의 것을 선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뜻이다. 어떤 사제의 고백처럼, 이 시대에 성지 순례자는 많은데 진정으로 목숨을 바칠 순교자는 보이지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것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보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을 더 따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예수님 생각은 우리 뜻과는 사뭇 다르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내가 참으로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재산을 그에 맡길 것이다"(루카 12,43-44).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루카 12,47).
오늘날 세상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가관이다. 재벌가, 위정자, 지식인들은 세상의 주인이 누구인지 도무지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자신들 이익만을 챙기는 것을 충실이라 여긴다. 힘없는 국민들이나 주변의 약자들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사실 충실과 불충실의 경계는 종이 한 장 차이만큼이나 가깝다. 그러니 주님께 모든 것을 걸고 주님 말씀에 따라 살고자 나선 교회 공동체마저 세상의 시류(時流)에 편승하려 든다면 과연 하느님 일꾼으로서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감히 주님께 고백할 수 있겠는가.
| ▲ 신대원 신부 (안동교회사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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