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끝자리에 앉아라"

namsarang 2013. 8. 31. 20:41

[생활속의 복음]

"끝자리에 앉아라"

 

연중 제22주일(루카 13,22-30)

연중 제22주일이면서 순교자성월의 첫날이다. 교회는 신앙의 해를 맞아 '신앙의 재발견과 교회의 쇄신'이라는 주제를 앞세워 순교자들의 열정적 신앙을 재조명하고, 동시에 신앙 선조들이 살았던 교우촌이나 치명했던 장소 등지에 순례를 권장하고 있다. 그만큼 이 시대 신앙인들 삶이 위태로운 지경에 놓여 있다는 방증이 아닌가 싶다.

 어떤 신부님은 "치명터나 교우촌 등지를 순례하는 사람은 많아도 이 시대를 위해 순교할 순교자는 왜 없는가"라고 한탄했다는데, 그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저마다 상대방더러 순교자가 되기만을 바라고 자신은 그저 순교지를 순례하는 순례자이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순교자는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가? 지난 주일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루카 13,30)라고 하셨고, 오늘은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루카 14,10) 하셨다. 이어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4,11)라고 하신다.

 순교자의 태도는 순교하기 전에 우선 '끝자리에 앉을' 준비가 돼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도 바오로처럼 "나는 어떠한 처지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리 4,11-13)라고 고백할 줄 아는 사람이 결국 순교의 영광을 차지하지 않겠는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끝자리에 앉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이는 곧바로 바보 취급당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남들보다 더 늦게 들어왔으면서도 남들보다 앞자리에 앉아야 하고, 공부라면 언제든지 남들보다 앞서야 하고, 재산이나 권력이라면 그것으로 남들을 내리누를 수 있을 만큼 가져야 한다는 것이 우리 시대 사람들 논리라면 논리다. 그 논리는 다분히 탐욕적이며, 상대방을 굴복시켜 주저앉히거나 끌어내려 기어이 끝자리로 내몰려는 반인륜적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논리가 마지막까지 통하면 참 좋겠지만, 그러나 세상의 일이란 것이 자기 뜻대로 이뤄질 정도로 그렇게 녹록하기만 한 걸까? 인류가 걸어온 역사를 되짚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진리다.

 예부터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닐 것이다. 권력은 기껏해야 10년을 못 넘기고, 화려한 꽃이라도 열흘을 넘기는 경우가 없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우리네 인생살이도 결국 아무리 윗자리를 차지하려고 애써도 10년도 못 가는 권력, 열흘도 못 넘기는 꽃일진대, 저마다 권력을 탐하고 화려함을 추구하려 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차라리 함께 서로 돕고 의지하고 나누고 섬기며 살 생각을 한다면 모두가 1등의 삶, 화려한 삶을 살고 누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사실 남의 생각을 바꾸기란 쉬워도 자신이 품고 있는 생각의 틀을 바꾸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생각의 틀을 바꾼다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태도를 완전히 바꾼다는 뜻과 같다. 회개(悔改)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못된 마음심보를 고쳐먹는 일, 끝자리에 앉을 줄 아는 일,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일이 아니겠는가? 순교자성월 첫날을 보내면서, 주님을 위해 목숨마저도 아깝게 여기지 않고 봉헌한 순교자들 삶을 생각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현재 우리 시대에 만연해 있는 물질과 권력과 학력 등등의 '최고지상주의'의 틀을 벗어버리고 주님 닮은 가장 낮은 곳에 서 있어도 만족할 줄 아는 마음부터 가져야 한다.

 신앙의 해를 보내면서 신앙의 재발견과 교회의 쇄신을 희망하려면, 먼저 끝자리에 앉을 줄 아는 용기부터 가져야 할 것이다. 또 이미 끝자리에 앉아 있는 형제자매들을 존경할 줄 아는 마음부터 가져야 한다. 박해시대를 살았던 선조 신앙인들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자기 자리를 이웃들에게 내어 줄줄 아는 삶을 살았는데, 오늘을 사는 우리는 오히려 끝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 자리는 내어주지 못할망정, 함부로 깔보고 멸시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한 줌도 안 되는 인생에서 탐욕을 부리기보다는 오히려 끝자리에 앉을 각오로 힘없고 어려운 이들 편에 서서 나눌 것은 나누고 섬기면서 살 줄 아는 자세부터 연습해야 하지 않겠는가?
▲ 신대원 신부 (안동교회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