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namsarang 2013. 9. 8. 16:50

[생활속의 복음]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연중 제23주일 (루카 14,25-33)

연중 제23주일이다. 요즈음의 시류(時流)가 심상치 않다. 평화를 말하면서도 무력을 강화하고, 정의를 말하면서도 모두 나눠가져야 할 소득마저 분배하지 않고, 민주를 말하면서도 전제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미래를 말하면서도 암울했던 과거로 회귀한다. 진실을 말하자면서도 은폐나 조작이나 사기를 일삼고, 평등을 주장하면서도 차별을 조장하고, 화해를 부르짖으면서도 갈등과 긴장을 일으키며, 공동체를 주장하면서도 개인주의를 외친다. 또 사람의 행복이나 복지를 운운하면서도 타인의 행복을 빼앗고 복지의 폐해만을 강조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자칫 우리 신앙인들마저 자기를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길을 계속 걸어가지 못하고, 도중에 주저앉을까 매우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주님이신 예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말씀은 요즈음 시류, 대부분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서와 대단히 거리가 있어 보인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27).

 주님의 이 말씀은 실제로 부모나 형제자매를 모두 버리라는 말씀이 아니라 그들마저도 주님께서 보내신 특별한 선물임을 자각하고, 자신의 개인적 이기심이나 탐욕을 조장하는 도구로 삼지 말라는 말씀일 것이다. 부모나 형제나 주변 지인들을 자신의 이기심이나 탐욕을 조장하는 도구로 삼는 사람은 결국 그들을 자신의 전유물로 삼는 것이고, 그들을 살인하는 것이며, 그들을 멍청이로 여기는 자다. 이럴 경우 주님께서는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마태 5,22)라고 강한 어조로 가르치신다. 왜냐하면 그런 자들은 결국 자신이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를 자신은 지려고 하지 않고, 만만해 보이는 주변의 사람에게 대신 지고 가게 하기 때문이다.

 십자가란 무엇인가? 십자가는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타인의 짐을 자기가 대신 지고 가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어려움이나 힘듦에 대해서는 마땅히 자신이 지고 헤쳐 나가야 할 짐일 수는 있지만 십자가는 아니다. 십자가는 자신이 지지 않아도 되는 것인데, 타인의 어려움이나 힘들어하는 모습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 대신 지고 가는 태도다. 그래서 십자가는 곧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가 된다. 그 십자가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지고 갈 수도 있다. 내가 나에게 오는 십자가를 외면할 경우다. 주님께서 지고 가신 바로 그 십자가를 우리는 기억해야 하고, 또 순교자들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모습을 떠올려야 한다. 주님이나 순교자들은 스스로를 향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십자가를 절대 외면하지 않으셨다.

 십자가를 외면하는 것은 곧 가슴 속에 사랑을 품고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사랑이 없기에 남의 어려운 사정을 걱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에게 다가오는 짐마저 벗어 넘겨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의 야윈 어깨를 짓누르려고 한다. 타인은 낮아지게 만들고 자신은 높아지려는 데 온 힘을 다 기울이는 사람이다. 자기가 가지기 위해 얼마 남지 않는 타인 것을 빼앗아 자기 소유로 삼으려는 자다. 자신만은 하느님 나라에 가고 남들은 지옥으로 빠져들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자의 가슴엔 피도 눈물도 없을 것이다. 피도 눈물도 없으니 사랑은 더욱 없을 것이고, 사랑이 없으니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기란 얼마나 더 힘들겠는가?

 주님께서는 "너희 가운데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 33)고 하셨다. 소유(所有) 곧 가진 것에는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도 함께 해당한다. 부모나 형제자매, 그리고 처자식을 움켜잡고 놓아주지 못하는 행위, 돈과 권력과 학벌과 명예만을 존중하고 그 외의 것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 태도, 자신이나 자신이 알고 있는 이에게만 잘해주고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무시하거나 멸시하는 태도, 자신의 주장은 모두 옳고 남의 이야기는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는 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환경을 마구 파괴하거나 여린 생명을 짓밟는 태도 등은 모두 오시고 사시고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부활하신 주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분을 믿고 따르려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다.

 사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쩌면 매우 어정쩡한 태도, 이중 잣대를 갖고 신앙을 살아가지는 않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버림과 따름' 사이에서 버릴 것은 버리지 못하고 따라야 할 분에 대해서는 선뜻 따라나서지 못하는 우리다. 무엇 때문에 입으로는 그분을 따른다고 하면서 행실로는 망설이고 주저하면서 엉거주춤하고 있는 걸까? 그것은 한쪽으로는 주님을 모신다고 하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주님을 팔아 자신의 안위와 영달을 추구함이 아니겠는가? 주님 제자임을 내세워 주님을 팔아먹는 되먹지 못한 소인배임을 자임하는 자는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 신대원 신부

(안동교회사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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