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8주일 (루카 12,13-21) 연중 제18주일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고, 건강하면서도 오래 살기를 바란다. 그러한 바람 때문에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 속에 평생 자신을 지켜줄 의지할 만한 데를 찾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의지할 만한 곳이란 것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때가 많다. 어떤 이들은 신(神)에게 의지하고, 어떤 이는 부처나 조상들에게 의지해 보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한다고 생각될 때는 과감히 결별하고 또 다른 곳을 찾아 나선다. 그러다가 마침내 자기 눈에 구체적으로 보이고 또 잡히는 것, 예컨대 학벌과 재벌, 권력, 명예 따위에 목숨을 거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신의 목숨이나 인생 전체를 죽고 나면 아무짝에도 쓸 수가 없는 것에 의지하려 드는 것이다. 이는 하늘의 뜻과 인간의 탐욕을 구별하지 못하는 무지(無知) 때문이 아닐까.
「명심보감(明心寶鑑)」에는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는 말과 '인무백세인 왕작천년계(人無百歲人 枉作千年計)'라는 말이 있다. 사람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고, 또 사람이 100년을 사는 이가 없는데 부질없이 1000년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다. 우리 신앙 선조도 일찍부터 부질없는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영원한 것'에 대해 뜻을 두는 삶을 살았다.
특히 한국 최초의 수덕자라고 일컫는 홍유한(洪儒漢, 1726~1785) 선생과 그 후배 권철신(1736~1801) 이하 강학회원들은 판토하(1571~1618)가 저술한 교리서 「칠극(七克)」을 읽고 부질없는 삶을 버리고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영원한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교만을 누르고, 질투를 가라앉히며, 탐욕을 풀어버리고, 분노를 없이 하며, 탐을 내어 먹고 마시는 것을 막아버리고, 음란함을 막으며, 게으름을 채찍질했다고 한다.
유가의 「명심보감」이나 선교사가 저술한 「칠극」은 모두 인간 생명이 인간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 혹은 하느님께 달려있음을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1000년을 살 것처럼 온갖 탐욕을 부려놓고도 뜻대로 되지 않으면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해대고,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와 등지기를 손바닥 뒤집기보다 더 쉽게 한다. 이처럼 세상에는 인생의 의미, 생과 사에 대해 말해주는 종교와 각종 경전이 허다하지만 세상은 점점 탐욕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 과정에서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가니,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 오늘날 세태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도 과거 성현들의 가르침들이 틀리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참되다는 것을 재확인시켜주고 계심을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주십시오"(루카 12,13)라고 말하자, 예수님께서는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하고 호통을 치시며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 12,14-15)고 하신다. 또 사람 생명이 그 사람에게 달려 있지 않고, 하느님께 달려 있음에 대한 적절한 비유 말씀을 들려주시며 한층 더 강한 경고의 말씀으로 탐욕으로 가득 차 있는 우리 가슴을 후려치신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도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루카 12,20-21).
모든 면에서 과거보다 훨씬 편리한 시대를 사는 우리는 너무나 많은 세속적 것들에 익숙해져 있다. 무엇이 참된 것인지 아닌지를 분간하지 못한 채 자신의 내면이 병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자꾸만 겉치레만을 꾸미려 든다. 학벌에 짓눌리고, 명예와 권력의 시녀가 되며,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지도 못한 채 재화에 노예가 되어 무엇이 진리인지 아닌지를 구별하지 못하고 죽음을 향해 브레이크도 없이 치달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 6,19-20)고 하신다. 창조주 하느님은 생명이시다. 생명이신 분이 우리에게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 주셨다. 생명은 결코 우리가 잘나서 누리는 것이 아니라 모두 생명을 주신 분의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는가? 하느님과 그분께서 보내신 분을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가 세상 것들에 욕심을 내고 탐욕을 부려 "그분의 말씀을 부끄럽게 여긴다면"(마르 8,38), 그분 역시 그러한 우리를 부끄럽게 여기실 것이 너무도 자명하지 않겠는가?
| ▲ 신대원 신부 (안동교회사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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