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6주일ㆍ농민주일 (루카 10,38-42) 연중 제16주일이자 농민주일이다. 한국교회는 1995년 주교회의 결정에 따라 매년 7월 셋째 주일을 농민주일로 지내며, 농사짓는 일이 곧 하느님 창조사업에 동참하는 길이요, 그 생명운동에 함께하는 것임을 천명하면서 농민들 노고를 하느님께서 헤아려 주시기를 기도한다.
교회는 오늘 농민들의 피땀 어린 노력과 그 수고를 기억하고, 도시민에게도 하느님 창조질서 보전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농사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곧 생명이신 하느님과 하나되는 삶임을 일깨워 줘야 한다. 그래서 생명을 다루는 농사에 농촌과 도시가 하나임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농업이란 농사짓는 일이고, 농사짓는 일은 땅을 일구고 씨앗을 심으며, 싹이 움트면 정성스럽게 가꾸고 열매가 열리면 소중히 거둬 거기에 담긴 생명을 자신은 물론 생명을 지닌 모든 이와 나눠 먹는 일이다.
구약에서 하느님 말씀을 거역한 최초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는 죄를 묻고 생명을 거둬들이는 대신 외려 또 다른 축복의 말씀으로 죄 많은 사람의 생명을 이어가게 해주시며, 그 방법으로 농사짓는 일을 허락하신다.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창세 3,10). 따라서 농사는 천벌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느님께서 내리신 소중한 축복이다.
농사짓는 일을 농업이라 하고, 농사짓는 사람을 농민, 농사꾼이라고 부른다. 농사짓는 일이 사람의 일이긴 하지만 흙과 지렁이, 햇빛, 공기, 물, 미생물, 기온 등의 협조를 받아야만 이뤄질 수 있는 공동체적 일이다. 농사짓는 일은 제 혼자나 사람들만의 일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에 서로 주고받는 더불어 살기 일, 혹은 함께 사는 일이다. 그래서 자기만 살려고 빼앗거나 독차지하지 않으며, 자신은 놀면서 누구를 종용해 일을 시켜 지배하거나 핍박하지도 않는다. 또 세상의 모든 사람은 농사지어 얻은 수고의 열매로 생명을 이어가지, 컴퓨터나 자동차 따위를 바수어 먹으며 생명을 영위해 가지 않는다.
농사는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에 하느님 창조사업과 가장 밀접히 연결돼 있다. 예수님께서도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한 15,1),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 5,17)라시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농사와 당신 일을 연결하신다.
언제부터인가 이 땅에서 농사짓는 사람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농사지을 땅마저 농사짓는 일은 하지 못하고 그 열매를 독차지하려는 사람들에게 천대받고 홀대받으며 점점 줄어들고 있다. 농사짓는 일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니, 모든 피조물 역시 신음하고 진통을 겪고 있다. 생명을 다루는 일이 빼앗기고 유린당하니, 모든 생명을 지닌 이들이 동시에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 욕심이 생명을 이어가는 먹을거리를 빼앗아 독점한다. 독점하는 사람들은 놀고먹으며 이 땅을 점점 병들게 하고, 병든 사회가 사람을 더욱 욕심쟁이로 만든다. 농사꾼들은 점점 변두리로 밀려 나가고, 그 자리에 초대형 욕심쟁이들이 자신들의 못된 욕망을 맘껏 펼친다. 생명을 다루는 참된 일과 일꾼들은 점점 찬밥신세가 돼가고, 그 자리에 죽음의 문화가 거짓과 폭력 등으로 포장된 채 생명문화처럼 행세한다.
이는 생명이신 하느님 일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생명을 다루는 일이 생명을 죽이는 못된 폭력에 내쫓기고 있으니, 사람뿐 아니라 생명을 지닌 모든 것들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병들어 신음할 수밖에. 일하는 사람은 죽도록 일만 하고 쉬는 사람은 쉬기만 하는 것이 오늘의 현상이다. 사람은 누구나 일할 권리와 쉴 권리를 가지고 있고, 일하면 수고의 열매도 정당하게 거둘 권리가 있다. 놀고먹는 이들, 하느님 일을 무시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생명의 먹을거리를 가지고 장난치는 이들이 점점 목에 힘을 주는 사회이고 보니, 장차 이 시대가 어떻게 될까?
생명을 다루는 일은 생명이신 분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일이다. 복음에서 마르타는 주님 말씀을 듣고 있는 마리아를 가리키며 주님께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루카 10,40)라고 퉁명스럽게 말한다. 주님께서는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 10,42)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 역시 한가지뿐이다. 그것은 생명이신 분께서 주신 바로 그 생명이다. 그러므로 농사짓는 사람들은 참 좋은 몫을 택했고, 농사짓는 사람들이 생명이신 하느님 생명창조사업에 동참하고 있는 이상 그 누구도 그들을 무시하거나 그들의 몫을 빼앗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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