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특집 / 가톨릭교회는 조상 제사를 어떻게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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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는 조상 제사는 우상숭배가 아닌 사회 문화적 풍속으로 인정하며, 예식을 통해 가족 공동체의 화목과 유대를 도모할 것을 권하고 있다. 사진은 한 본당에서 한가위 합동 위령미사 후 공동 추모의식을 거행하고 있는 신자들. 평화신문 자료사진 | 2011년 1월 서울가정법원은 제사를 둘러싼 종교적 갈등으로 가정 불화를 겪는 부부에게 이혼 판결을 내렸다. 불교 신자로 유교 전통을 중시하는 남편 이씨가 개신교 신자인 부인 윤씨를 상대로 제기한 이혼 및 위자료 청구 소송이었다. 명절과 주일이 겹친 날, 남편이 "제사 지내러 부모님 댁에 가자"고 했고, 부인은 "주일이라 교회에 가야 한다"며 거절했다. "절은 안 해도 되니 그냥 인사만 하자"고 하자, 부인은 "제사에는 참석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두 사람의 갈등은 집안 싸움으로 번졌고, 법원은 이들에게 이혼 판결을 내렸다.
민족 대명절인 한가위는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이 만나 조상의 은공에 감사드리고 마음을 나누는 사랑의 잔치다. 그러나 종교적 이유로 제사에 대한 이해가 달라 서로 체념한 채 기본적인 도리만 지키고 명절을 보내는 가정도 있다. 가톨릭교회는 조상 제사를 어떻게 보고 있으며, 제사로 인한 가족 갈등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
#가톨릭교회가 바라보는 제사
한국교회 창립 당시 초기 신자들은 조상 제사 행위에 대한 금지 명령을 잘 몰라 제사를 지내도 되는지 의문을 품었다. 신자들은 1790년 '조상 제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신주를 모셔도 되는지'를 묻는 편지를 사행원(使行員, 외교사절단) 윤유일 바오로를 통해 북경교회에 보냈다.
북경교구 구베아 주교는 교황청의 조상 제사 금지 명령을 전달했고, 윤유일은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조상 제사의 근본 의도는 '돌아가신 이 섬기기를 살아 계실 때 섬기듯이 함'(事死知事生)에 있으니, 만약 천주교를 믿으면서 제사를 지낼 수 없다면 매우 곤란한 일인데 무슨 방도가 없겠습니까?"
「한국천주교회사」를 저술한 샤를르 달레 신부의 표현에 따르면 교황청의 제사 금지 명령은 "조선 국민 모든 계층의 눈동자를 찌른 격"이었다. 전라도 진산에 살던 선비 윤지충 바오로(1759~1791)와 외종형 권상연 야고보(1751~1791)는 교황청의 제사 금령에 따라 신주를 불태웠다. 1791년 윤지충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는데, 이들은 전통 제사 대신 천주교식 장례를 치렀다. 이는 당시 유교적 전통사회에서 전통과 윤리 질서를 근원적으로 거부한 도전이었다. 두 사람은 이 사건으로 참수를 당해 한국교회 첫 순교자가 됐다. 이것이 신해박해(1791년)다.
조상제사 금지에 관한 교회 가르침은 1939년 비오 12세 교황이 '중국 예식에 관한 훈령'을 발표하면서 바뀌었다. 비오 12세 교황은 이 훈령에서 "조상 제사는 우상숭배가 아니며 사회 문화적 풍속"으로 가톨릭 교리와는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교회는 시신이나 무덤, 영정, 위패 앞에서 절하는 것을 허용했다. 다만 축문을 읽거나 합문하는 것은 금하고, 위패에 신위 또는 신주라는 글씨는 쓰지 못하게 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여러 종족과 민족의 훌륭한 정신적 유산을 보호 육성한다. 또 민족들의 풍습 중에 미신이나 오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지 않은 것이면 무엇이나 호의를 가져 고려하고, 할 수 있다면 잘 보존하고자 한다"(「전례헌장」 제37항)고 밝히고 있다.
1995년에 발효된 「한국천주교 사목지침서」에는 "제사의 근본정신은 선조에게 효를 실천하고, 생명의 존엄성과 뿌리 의식을 깊이 인식하며, 선조의 유지를 따라 진실된 삶을 살아가고, 가족 공동체의 화목과 유대를 이루게 하는 데 있다"(제134조 1항)고 규정하고 있다.
주교회의는 2012년 3월 '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 예식'과 '설ㆍ한가위 명절미사 전이나 후에 거행하는 조상에 대한 효성과 추모의 공동의식'에 관한 지침을 제시했다.
#가족간 일치와 화합을 위해
가톨릭 신자 가정에서 제사는 생명의 뿌리를 재인식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든 성인의 통공 안에서 선조와 일치와 유대를 느끼는 제사여야 한다. 다만 한국사회는 다종교사회이고 종교마다 종교적 신념과 그 신념을 표현하는 제례 예식이 다르므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송용민(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 총무) 신부는 "제사 때 절을 하지 않는 등 다양한 종교 간 문화 풍습으로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제사 예식은 종교적 신념을 나타내는 표현이기에 상대방에게 종교적 신념을 강요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송 신부는 이어 "성숙한 신앙인에게 제사는 가족을 위한 행사 차원의 봉사로, 가족애를 표현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면서 "가톨릭 신자들이 종교 간 제사 갈등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나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