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상에는 어떤 원리가 담겼을까? |
추석(秋夕), 가을저녁이라는 뜻의 시적인 이름이 가슴을 적시는, 더도 말고 덜도 말라는, 푼푼한 민족의 명절 한가위가 눈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추석의 으뜸은 당일 아침에 치르는 차례일 겁니다. 뜻을 알고 지내면 가족애가 더 깊어질 건데 안타깝게도 일부 가족에서는 종교, 일 분담, 금전 등의 문제로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차례는 어원만으로 보면 ‘차를 올리고 지내는 간략한 제례’라는 뜻이지요. 실제로 중국에서는 차례가 아니라 제사 때에도 차만 올리고 조상을 모신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차례에서도 옛날 제사의 성격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고요. 유교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논어》 전체를 보건대, 공자는 귀신의 존재와 귀신을 어떻게 섬기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듯합니다. 공자는 각자의 분수에 맞춰 정성껏 조상에게 감사하는 것에 제사의 의미를 뒀습니다.
고 김충렬 고려대 철학과 교수는 “제사에는 교육의 의미도 컸다”면서 “우주 삼라만상의 원리에 따라 제사상을 정성껏 준비해 치르면서 조상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교육이 이뤄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추석 차례상에는 우주의 원리가 녹아 있습니다. 동양철학의 음양오행설이 깃들어 있지요. 차례상은 실제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과 관계없이 위쪽이 북, 아래쪽이 남을 가리키는데 북쪽에 신위를 놓지요. 북쪽이 오행 가운데 수(水)를 뜻하고 가장 높은 위치이기 때문에 조상의 뜻을 받들겠다는 뜻입니다.
음식은 다섯줄로 놓는데 음양의 원리에 따라서 배치합니다. 큰 원리는 양(―)이 홀수, 오른쪽, 동쪽, 머리를 뜻하고 음(--)이 짝수, 서쪽, 꼬리를 뜻한다는 것입니다. 제사 음식은 다섯 줄로 배치하는데, 신위 쪽에서부터
①메(밥)와 국=추석에는 송편을 밥 대신 올리기도, 밥과 함께 올리기도 합니다. ②생선과 고기=어동육서(생선은 동쪽, 고기는 서쪽)와 두동미서(생선의 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의 원리에 따라 배치합니다.
③생선·두부·고기 등의 탕류를 건데기 위주로 놓습니다.
④포와 나물, 젓갈, 식혜 등을 놓습니다.
⑤과일=조율이시(왼쪽부터 대추, 밤, 배, 곶감 순) 또는 조율시이(대추, 밤, 곶감, 배 순)의 원칙에 따라 놓거나 홍동백서(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의 원리에 따라 놓습니다.
이런 배열을 통해 세상에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질서와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조화가 있음을 가르치는 교육이 자연스레 이뤄지는 것이지요. 음양이 서로 보완해서 하나를 이룬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요. 그러나 차례상을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지에 대한 만고불변의 정답은 없습니다. 지방마다 특산물이 다르고 가정마다 풍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남의 제사에 곶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 하지 말라’는 속담이 나온 것, 잘 아시지요?
그렇다면 집안 경제사정이 갑자기 나빠져서 제수 음식을 두 세 줄만 놓는 것은 어떨까요? 최선의 정성을 담았다면 그것도 괜찮고, 오히려 무리해서 가족 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 유교철학자들의 견해입니다.
바나나나 파인애플을 놓는 것은 어떨까요? 고인이 좋아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다만 바나나는 중앙을 상징하는 노란색이니까 다섯 째 줄의 한복판에 놓는 것이 좋겠고 파인애플은 오행의 ‘금’에 해당하므로 서쪽에 놓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만약 고인이 잡곡보리밥을 좋아했다면 흰 메 대신에 놓을 수가 있을까요? 유교철학자 대부분은 그것도 무방하다고 설명합니다. 차례에서 중요한 것은 조상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과 정성입니다. 정성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이어서 가족의 사정을 벗어나면 좋지 않습니다. 결국 차례는 가족이 함께 (직설적이 아니라) 은유적으로 세상을 가르치고 배우면서 정을 나누는 시간이 돼야하겠지요? 이번 추석 차례는 꼭 그런 자리가 되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
|
'창(窓) > 게시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08년 日지도, 독도를 대한제국 영토로 표시 (0) | 2013.10.25 |
---|---|
제사, 우상숭배 아닌 문화 풍속 (0) | 2013.09.17 |
방사능 겁이 나서 생선 안 드신다고요? (0) | 2013.09.15 |
국립대 병원들 퇴직자 가족까지 진료비 깎아 주나 (0) | 2013.07.09 |
"남성들이여, 부엌을 점령하라!" (0) | 2013.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