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窓)/게시판

"남성들이여, 부엌을 점령하라!"

namsarang 2013. 1. 4. 23:05

[아침편지]

 

"남성들이여, 부엌을 점령하라!"

성귀옥 주부·서울 용산구

 2013. 01. 04  금요일       

 

"결혼하면 부엌을 점령하고 살아라." 큰아들을 장가보내면서 해준 말이다. 우리 사회의 양성평등이 자리 잡아가는 것 말고도, 몇 해 전 지은 지 150년 되었다는 고옥(古屋)에서 하루를 지내며 느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인이 별장처럼 사용하던 그 고옥을 헐고 다시 지어야 한다기에 마지막으로 역사 체험이라도 해볼 심산에 강원도 골짜기까지 찾아갔다. 좁은 방에 비해 부엌이 커서 우리는 부엌 가마솥 옆 따뜻한 부뚜막에 앉아 아궁이에 석쇠를 넣어 고기도 굽고, 곁불에 군고구마 잔치를 벌였다. 펄펄 끓는 가마솥 물을 떠서 커피를 타 마시며 그 옛날 아이들이 추위에 씻을 더운물을 얻어가는 풍경도 떠올렸다. 쌀독, 항아리, 아궁이 속 타오르는 불, 김 나는 가마솥 등을 보면서 옛 어머니들의 힘과 지혜가 부엌에서 나왔음을 새삼 깨달았다.

현대의 부엌은 가스불, 수돗물로 옛 어머니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편해졌다. 학교 급식으로 아이들 도시락 싸주는 역할에서도 해방되었다. 하지만 맞벌이 부부가 많아졌음에도 아직도 부엌은 물, 불을 다스리며 식구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어머니들의 전유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부엌 책임자인 어머니들의 가정 내 위상은 굳건하다.

반면 가장들은 집안에서 서열 몇 순위로 밀려나 있는가? 얼마 전 인터넷에서 시골에서 노부부가 살다가 부인을 잃고 혼자 남게 된 어르신이 도심의 아들네에 들어와 살다 아들에게 "잘 있거라 ③번아, ⑥번은 간다"는 글을 남기고 가출했고, 아들은 아버지를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암호 같은 ③과 ⑥의 의미를 알게 됐다는 글을 읽었다. 가출한 노인이 느낀 가정 서열은 ①며느리②손녀딸③아들④강아지⑤파출부⑥본인의 순이었다는 것이다. 그냥 우스개 글이라지만 우리 사회에서 남성들의 가정 내에서 위상의 변화를 읽기에는 충분하다. 이처럼 남자들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약해지고 소외되어 가는 현실을 어떻게 역전시킬 수 있을까?

요리를 하게 되면 양념들의 어우러짐에서 조화와 융통성을 배운다. 식초와 설탕의 조합으로 맛을 탄생시키고 짠맛이 과하면 물을 좀 더 붓거나 단 것을 가미한다. 전업주부로만 살아온 중년 여인들이 어디서나 친화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면 설득력 있는 이야기다. 이제 남성들도 부엌을 접수하여 요리를 하고 물, 불을 다스리며 삶의 지혜를 축적해 보자. 가족이 함께 있을 때 아이들이 "엄마, 배고파"가 "아빠, 밥 주세요"로 변하게 된다면 이 땅의 아빠들도 가정 내에서 외롭지 않으리라! 부엌은 부부가 평생 동업자로 지내기에 얼마나 좋은 곳인가? 남성들이여, 부엌을 점령하라! 참고로 부엌 관리자는 정년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