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두 번 간 남자, 군종교구 구성진 신부의 사목일기
| ▲ 구성진 신부가 무열대성당 성모동산 앞에서 병사들과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병사들을 부르고 있다. 구 신부의 모습이 사병들을 주님께 이끄는 손길처럼 보인다. 이힘 기자 |
안녕하세요? 군종교구 구성진 신부입니다. 군인주일(6일)을 맞아 오랜만에 평화신문에 얼굴을 비추려니 쑥스럽네요. 독자 여러분 중 제 이름 기억하시는 분 있으면 손 한번 들어보세요. 하나 둘 셋…? 생각보다는 적지만 그래도 많네요.(하하) 2007~2008년 평화신문에 '나? 군종신부!'라는 꼭지를 연재한 주인공입니다. 덕분에 당시 교구장님께서 '구 작가'라는 별명을 지어주셨지요.
군 복무를 마친 성인 남성들이 종종 꾸는 악몽 중 하나가 '군대에 다시 가는 꿈'입니다. 이 꿈을 꾼 날이면 "나는 안 된다"며 소리를 빽 지르거나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은 채 숨을 헐떡이며 깨어날 때가 있습니다. 꿈인 것을 알고는 '휴~'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지요. 저 역시 군대에 두 번 왔습니다. 9남매 중 7형제 여섯 째인데, 제가 집안에서 여덟 번째 입대자입니다.
우리 한국교회에는 군대에 두 번 간 남자들이 꽤 있습니다. 현재 복무 중인 현역만 92명인데, 바로 군종신부들입니다. 저는 1992년 육군 대위로 임관했으니 올해로 22년 차입니다. 오랜 시간이었지만 참 빨리 지나간 것 같습니다. 그동안 군에서 무사히 사목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하느님 은총 덕분이고,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물심양면 도와주신 은인 여러분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모두 감사드립니다.
군종신부들은 매우 바쁘게 지냅니다. 토요일과 주일에는 본당과 공소를 돌며 미사를 집전해야 하고, 사목회의가 있거나 본당에 행사라도 있으면 더 분주해집니다. 저는 지난해 무열대본당에 다시 부임했는데, 새롭게 부대 업무를 익히느라 정신없는 한 해가 지났습니다. 입술이 늘 부르텄을 정도였죠. 평일에는 교구 업무와 각종 회의에 참석하거나 국방부와 육군본부 업무를 해야 합니다. 또 제2작전사령부 예하 전 군종장교와 부사관, 행정관들을 관리하는 중책도 맡고 있습니다. 육군이 운영하는 부대 부적응자 재교육 프로그램인 '비전캠프'에도 관여해야 합니다.
군종신부 초년병 시절에는 힘들었지만 재미있던 기억이 많습니다. 곧 제대한다며 88라이트 담배 한 갑을 선물한 이름 모를 신자 병사, 커피를 주려고 마련한 컵이 점점 줄어서 강론 때 '여러분 후배들 마실 성당 컵이 계속 없어지고 있다'는 말 한마디에 원래 개수보다 더 컵이 많아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느 주일엔 본당 교중미사에 이어 15군데 공소를 돌며 미사를 봉헌한 적도 있고, 신자들과 함께 양말 2만 켤레를 팔아 군 공소를 신축한 기억도 생생합니다.
저는 군종신부가 된 뒤부터 지금까지 주일미사 때마다 '신자들을 한 번은 웃게 하자'는 마음으로 미사를 준비해 왔습니다. 틈나는 대로 유머책도 읽으며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지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애드리브가 잘 통하지 않을 때가 있네요.(하하) 세대 차 때문인지 20대 병사들은 잘 웃지 않습니다.
군 복음화 얘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1000원짜리 선물을 전했을 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은 군대뿐일 것입니다. 저희 본당에서는 주일미사가 끝나면 병사들을 위해 라면을 끓여줍니다. 그런데 그 라면 한 그릇이 병사들을 하느님 자녀로 만들기도 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10년 넘게 냉담했던 사병도 '예수님표 라면'에 열심인 신앙인으로 거듭납니다. 요즘말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비, 투자 대비 효과를 뜻함)가 으뜸인 곳이 군종교구라는 생각이 듭니다. 군 본당에서는 이러한 '1000원의 기적'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못믿으시겠으면 한 번 와보시라니까요.
우리나라에는 한 해 약 25만 명이 입대합니다. 육ㆍ해ㆍ공군에 따라 다르지만 21~26개월간 복무하지요. 아무리 군종교구에서 병사들을 오래 사목하고 싶어도 2년 뒤면 고향 교구로 돌아갑니다. 군종신부들은 지난해 2만 8980명에게 세례를 줬습니다. 사제 1인당 315명꼴입니다.
물론 교리교육을 충분히 할 수 없는 부대 여건상 선(先) 세례, 후(後) 교육 식으로 세례를 주기에 '초코파이 신자'를 양성한다는 비판도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점에 대해 교구장 유수일 주교님께서는 "한 번 뿌려진 복음의 씨앗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고 계십니다. 당장에 성실한 신자는 못되더라도 언젠가는 복음의 씨앗이 싹틀 날이 올 것이라 보신 것입니다.
요즘 성당에서 젊은이들을 보기 어렵다는 얘기가 자주 나옵니다. 젊은이들이 성당에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교회 울타리 밖이 더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군대는 다릅니다.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군대에 가고 싶지 않아도 가야 합니다. 성당에 나오든 안 나오든 젊은이들은 군대에 다 모여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제품(천주교)도 광고(선교)하지 않으면 판매가 잘되지 않듯, 일단 젊은이들을 성당에 나오게 해야 예수님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곳은 이제 군대뿐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예전보다 종교에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고해성사를 보지 않아 성체를 모실 수 있는 사병들 수가 날로 줄고 있습니다. 복음화율이 10%가 넘었다고는 하지만, 입대하는 보충대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면, 2% 남짓한 이들만 성체를 모십니다. 정말 신앙인답게 신앙생활을 하는 젊은이가 2%가 안 된다는 뜻이지요.
종교가 없는 젊은이가 늘다 보니, 다른 종교에서도 이들을 신자로 만들려는 노력이 대단합니다. 최근 논산 육군훈련소에는 2800석 규모의 성 김대건성당(옛 연무대성당)보다 훨씬 큰 법당이 지어졌고, 원불교도 선교에 매우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군 성당에 오는 젊은이들마저 지원과 관심 부족으로 모두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제 발로 찾아온 손님을 환대하지 않은 직무유기이자 죄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군 복음화에 관심을 둬야 합니다. 군에서 영세하는 젊은이들은 대부분 20대 초반 남성들입니다. 얼마 뒤면 사회의 주역이 될 주인공들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 될 이들이지요. 군 복음화를 위한 관심과 지원은 결국 한국교회 전체를 위하는 일입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