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나는 어떤 자리에 있을까

namsarang 2014. 4. 12. 21:51
2014. 04. 13발행 [1260호]

[생활속의 복음]

나는 어떤 자리에 있을까

 

주님 수난 성지 주일(마태 26,14-27,66)

 

▲ 조재형 신부 (서울대교구 성소국장)


 교회는 오늘부터 성주간을 시작합니다. 주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면서 우리를 위해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나를 위해 먼 길을 함께 가줄 친구는 있습니다. 나를 위해 자신의 것들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구원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구원자 예수'라는 노래를 한번 묵상하겠습니다.

 

 나는 나만 생각했었는데/ 나를 위해 주님 불렀는데/ 매 자리 선명하신 주님 나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나의 이름 잊지 않으셨네./ 가슴 메어질 듯 그 음성 나를 부르시네. 내가 이해받기를 바랐고/ 내가 위로받기 원했는데/ 못자국 선명하신 주님 나를 위해/ 십자가 위에 고통 중에도/ 내 이름 가슴에 안으셨네./ 녹아내릴 듯한 그 눈길 내게 말하시네.

 

 (후렴) 사랑한다. 너를/ 사랑한다. 너를/ 부족해도 가난해도 아파 신음 할 때도/ 사랑한다. 내가 너를 원한다./ 나는 구원자 예수 너의 사랑이다.

 

 이 노래를 작곡한 사람은 최연숙 아가타 자매입니다. 그녀는 부산에서 태어나 45년을 살았고, 스물한 살에 눈이 멀었습니다. 원인은 당뇨 합병증이었습니다. 열두 살에 소아당뇨 진단을 받은 뒤 끝을 알 수 없는 치료가 시작됐지만 1984년 겨울, 그녀의 꽃다운 시절은 검은 장막에 갇혀버렸습니다. 병상에서 일어난 뒤 아가타씨는 교리를 배워 보례와 견진을 받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앞날을 고민하던 중, 대세를 주선해 준 친척 수녀에게서 생활성가를 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그녀의 작품에는 자연을 노래한 것이 유달리 많았습니다.

 

 "실명하고 느낀 게 먼지, 때, 쓰레기더미에도 제각기 다른 색이 있더군요. 전엔 지저분하고 더럽던 모든 게 지금 생각하면 가슴 저리도록 그리워요." "햇살의 소리 들어보셨어요? 눈 감고 가만히 있어보세요. 공기의 움직임? 어떤 소리가 느껴져요. 숲에 햇살이 내려앉고 나는 분자가 돼 바람과 섞이는 느낌!"

 

 사실 아가타씨의 일상은 불편과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머릿속에서 샘솟는 노래를 얼른 적지 못해 답답하고, 남들이 잘못 받아쓴 악보가 돌아다녀도 뒤늦게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습니다. 끼니마다 스스로 인슐린 주사를 놓아야 하고, 인도자 없이는 집 밖에 멀리 다니지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제 십자가를 그냥 껴안고, 때로는 잊고, 이따금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불완전한 나는 완전하신 하느님을 못 믿어도 그분은 변함없이 나를 믿으신다'는 것 하나만 믿으며, 아가타씨는 오늘도 아름다운 노래를 만듭니다.

 

 오늘 우리는 수난 복음을 함께 읽었습니다. 주님의 수난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결정적 순간에 예수님을 배반했던 베드로, 자신의 꿈과 다른 길을 가시는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처럼 수시로 마음이 변하는 군중,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려는 대사제,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을 조롱했던 도둑이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 또한 평소에는 신앙생활을 한다지만 내게 피해가 온다 싶으면, 나에게 더 큰 즐거움이 있다면 기꺼이 신앙의 이름표를 떼고 살 때가 있습니다. 우리 또한 십자가, 희생, 겸손, 사랑이라는 길이 있지만 재물, 명예, 권력이라는 꿈을 쫓아갈 때가 많습니다. 너무도 쉽게 우리의 신앙을 팔아넘길 때가 있습니다. 우리 또한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을 지키려고 가난한 이들의 외침, 절망 중에 있는 이들의 절규, 아파하는 이웃의 고통을 외면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등장 인물 중에 '키레네 사람 시몬'이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사람입니다. 오늘 성경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예수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수건으로 닦아준 베로니카의 이야기도 알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두려워 도망갔지만 예수님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함께했던 여인들의 이야기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주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만일 2000년 전에 내가 예수님 수난의 길을 보고 있다면, 나는 어떤 자리에 있을까요? 지금 나는 나의 삶 속에서 어떤 자리를 걸어가고 있을까요? 

 

'생활속의 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활의 삶  (0) 2014.04.27
죽음 없이는 부활도 없다  (0) 2014.04.19
나는 과연 무엇을 보고 있는가?  (0) 2014.03.30
영원한 생명의 샘물  (0) 2014.03.22
버려야 할 것과 채워야 할 것  (0) 2014.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