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나는 과연 무엇을 보고 있는가?

namsarang 2014. 3. 30. 09:00

[생활속의 복음]

나는 과연 무엇을 보고 있는가?

사순 제4주일(요한 9,1-41)

▲ 조재형 신부 (서울대교구 성소국장)


   3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주님의 수난과 십자가를 생각하며 사순시기를 잘 지내야 하겠습니다.

   예전에 50년을 함께 살았던 노부부가 '스피드 퀴즈'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할머니가 맞춰야 할 문제는 '천생연분'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할멈, 우리들의 만남은 무엇이지?" 할머니가 대답하셨습니다. "웬수." 그러자 할아버지가 말씀하십니다. "네 글자로 하면 뭘까?" 할머니가 말씀하십니다. "평생웬수." 할아버지는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했지만, 할머니는 '웬수'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평생 할머니 속을 썩였던 할아버지가 목에 사레가 들려서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가 구급차를 불렀고, 병원에 도착했지만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운명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아직 약간의 기운이 남아서 말씀하셨습니다. "나 아직 안 죽었어!" 그러자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평생 말을 듣지 않더니, 의사 말도 듣질 않네! 의사 선생님이 죽었다고 하잖아!"

 눈이 있지만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삐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잣대로 보려 하기 때문에 현실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소경이 된 것은 조상의 탓도 아니고, 본인의 탓도 아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기 위한 것이다." 바리사이들은 사람이 아픈 것도, 장애인이 되는 것도 모두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같은 사물을 보면서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앞을 보지 못한 소경이 눈을 뜬 것은 축하할 일입니다. 가족들에게도 기쁜 소식입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소경이 눈을 뜬 것이 신학적으로 합당한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독화살의 비유와 같습니다. 사람이 독화살을 맞았으면 먼저 치료를 해야 합니다.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화살이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누가 쏘았는지를 먼저 따집니다. 왜 화살을 쏘았는지를 생각하는 동안에 화살에 맞은 사람은 독이 온몸에 퍼져서 죽을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을 묵상해봅니다.

 "너희는 사람들의 외모와 능력, 사람들의 겉모습만 보지만, 야훼께서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보신다." 마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신만의 성에 갇혀 다른 이들의 생각을 보지 못하고, 편견과 독단과 아집과 이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그런 나 자신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몸이 있어도 참된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그러기에 오늘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참으로 볼 수 있는 '심안(心眼)'을 요구하십니다. 참으로 들을 수 있는 '지혜'를 요구하십니다. 눈을 들어 세상을 봅니다. 참으로 보지 못하고, 참으로 듣지 못해서 눈과 귀가 있으면서도 그릇된 곳으로 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겉만 보고 사람을 판단해, 욕하고 비난하며 침을 뱉고 인격을 무시합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보는 사람은 보지 못하게 하고, 보지 못하는 사람은 보게 하려고 왔다." 진실을 애써 외면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거짓과 가식과 허영에서 벗어나 참된 진리를 보도록 요청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참된 세상을 보도록 인도하십니다.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세상을 보도록 인도하십니다. 희망과 평화, 진실과 사랑이 한데 어울려 참된 빛을 볼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십니다.

 아름다운 꽃을 보기 전에 저 땅속에서 쉼 없이 양분과 물을 찾고 있는 뿌리를 볼 수 있다면, 깨끗한 거리를 보기 전에 새벽부터 일어나 청소하는 환경미화원을 볼 수 있다면, 일등에게 찬사와 축하를 보내기 전에 꼴등에게 위로와 격려를 먼저 할 수 있다면, 용서받기를 원하기 전에 먼저 용서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둠에서 벗어나 이미 빛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천국이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원하는 모든 일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곳이 아닙니다. 천국이란 주님의 사랑이 있는 곳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께서 함께하시는 곳이 천국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 천국입니다.

 참회와 절제, 자선의 사순시기도 벌써 반이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난 과연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엇을 보기 싫어하는지 곰곰이 생각하면서 남은 사순시기를 지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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