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2주일(마태 17,1-9)
| ▲ 조재형 신부 (서울대교구 성소국장) |
오늘은 사순 제2주일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구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 뜻을 따르고, 하느님과 함께 가기보다는 우리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그릇된 길로 가려 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행복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행복한 삶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행복은 무엇일까요? 행복은 원하는 것이 채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돼야 행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다음은 문화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여유 있는 자금이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안정된 직업이 있으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가정을 이루고, 자녀들이 예쁘고 명석하게 자라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는 행복일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을 원한다면 바로 이와 같은 행복일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행복을 얻기 위해 살아갑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사탄이 예수님을 유혹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탄은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으로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편안한 의식주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을 능력을,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지위와 명예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행복도 좋지만 또 다른 행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또다른 행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채워져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비우고 버리고 떠나는 행복입니다. 인류 역사에 새로운 빛을 밝혀준 분들은 채워서 얻는 행복이 아니라, 비우고 떠나는 행복을 통해서 빛을 보여줬습니다. 석가모니는 화려한 궁궐을 떠났습니다. 왕이 될 수 있는 지위와 명예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보리수 아래에서 7년 동안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비우고 떠나야 얻는 행복을 깨우쳤습니다. 그것이 불교의 시작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편안하고 정들었던 땅을 떠났습니다. 비우고 버려서 새로운 행복을 얻게 됐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시작입니다. 거친 광야에서 뜨거운 햇빛 아래 목이 마를 수 있습니다. 낯선 곳에서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씨앗은 부서지고 깨져야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듯이, 아이는 따뜻하고 편안한 어머니의 품을 떠나야만 하나의 인격체가 돼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듯이,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명예와 권력을 모두 버리고 떠났습니다.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머물 수 있는 아름답고 순결한 '타볼 산'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거친 세상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 길이 십자가의 길이고, 고난의 길이고, 죽음의 길일지라도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세상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갈매기의 꿈」이라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갈매기 조나단은 무리와 어울려 거친 바다에서 먹이를 잡고, 하늘을 나는 것이 삶의 전부라는 것이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좀 더 높이, 좀 더 멀리 날고 싶어했습니다. 갈매기는 주린 배를 채우는 일, 동료들과 어울려 하늘을 나는 일도 좋지만 더 높은 세상, 더 먼 세상을 향해 동료들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전에는 느낄 수 없는, 전에는 배울 수 없었던 참된 비행의 기쁨을 알게 됐습니다. 그것은 떠나지 않고 비우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행복이었습니다.
우리가 채워야 할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인내, 겸손, 사랑, 희생, 헌신, 나눔'을 채워야 합니다. 우리 마음을 그러한 것들로 채우면 우리는 좀 더 가벼워져서 더불어 살아가는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상에 살면서도 천상의 삶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버리고 비워야 할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분노, 욕심, 이기심, 질투, 시기,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 것을 버릴 줄 알면 우리 영혼은 맑고 순수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받기보다 사랑하게 되고, 이해받기보다 이해하게 됩니다. 줌으로써 받고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비움의 영성, 버림의 영성, 떠남의 영성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채워야 할 것들을 너무나 쉽게 버리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정작 버리고 비워야 할 것들은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을 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행실이 아니라 당신의 목적과 은총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 은총은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이제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환히 드러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폐지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불멸을 환히 보여주셨습니다"(2티모 1,9-10).
바오로 사도는 왜 우리가 비우고 버려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는 영원한 생명과 불멸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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