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3주일((루카 24,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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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형 신부(서울대교구 성소국장) |
2011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부친께서 하느님 나라로 떠나셨습니다. 어느덧 3년이 지났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지혜로우셨고, 세상의 흐름을 잘 아셨습니다. 저는 아버님의 경륜과 지혜를 닮고 싶었지만, 아버님의 체질을 닮았습니다. 혈압이 높은 것, 치아가 좋지 않은 것, 일찍 머리카락이 하얗게 되는 것입니다. 혈압이 높기 때문에 건강에 신경 썼고 지금은 정상 혈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치아가 좋지 않아서 관리를 잘했고 그래서 지금까지 상한 이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되었기 때문에 세상의 유혹에서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지혜와 경륜이 모자라기 때문에 좀 더 겸손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계절에 하느님 품으로 가신 아버님께서 부족한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을 보면, 사도들이 자신들이 믿고 따르는 예수님에 대해 아주 열성적으로 증언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다 바쳐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음을 사람들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왜 그렇게 열성적으로 주님 부활을 전했는지 생각해 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그렇게 해서 무슨 이익을 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면서 사도들이 명예나 권력을 얻는 것도, 경제적 이익을 얻는 것도, 특별한 혜택을 받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사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희망과 신앙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가치였습니다.
신학생들이 제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사제 생활하시면서 좋은 것은 무엇입니까?’ 질문을 받고 잠시 생각했습니다. 사제직을 앞두고 고뇌하는 모습일 수도 있고, 이제 곧 다가올 사제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사제가 되면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고 싶어서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제 생활을 하면 자유롭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결혼하면 직장에 매이고, 가족을 돌봐야 하고, 앞날을 위해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지만, 사제 생활은 그런 면에서는 자유롭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사제 생활은 일을 하면서 결과를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보좌신부는 2년, 주임신부는 5년 동안 한 본당에서 사목하기 때문에 자신이 계획하고, 자신이 추진하는 일에 대해서 싫든 좋든 결과를 볼 수 있고 그것이 좋다고 말해줬습니다. 사제 생활은 보람 있다고 말해줬습니다. 나 때문에 절망 중에 있던 사람이 희망을 찾는 것을 봤고, 나 때문에 미움과 분노로 가득 찼던 사람이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을 봤으며, 죽으려고 했던 사람에게 삶에 대한 용기를 줄 수 있었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제 생활 중에 힘든 일은 왜 질문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힘든 것은 나중에 생각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신학생과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저 자신도 사제직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 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에서 비록 넘어지셨지만 다시 일어나셨고, 십자가에 달려 죽음에 임박해서도 하느님께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으며, 죽으셨지만 죽음의 어둠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제자들은 바로 그 예수님을 만났고, 그분과 함께 대화를 나누었고, 그분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서를 설명해 주실 때에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
이 봄에 들과 산에는 꽃들이 만발하고, 나무들은 새순이 돋아 생명의 기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연은 이렇게 봄이 왔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시기를 지내면서 그 부활의 기쁨과 부활의 영광을 우리 마음 안에 벅찬 감동으로 받아들이고, 우리 이웃에게 드러내고 증거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