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5주일(요한 14.1-12)
| ▲ 조재형 신부(서울대교구 성소국장) |
본당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강론할 때, 강론대가 왼쪽에 있었기 때문에 주로 왼쪽을 보고 강론을 했습니다. 한 교우가 오른쪽도 보면서 강론을 해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안 그러면 다른 성당으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사제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랑을 많이 받기 때문입니다. 용인 쪽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었습니다. 주인이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점심만 먹으러 갔는데 동동주를 공짜로 주셔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를 치료하러 치과에 가도, 머리를 손질하러 미장원에 가도, 약을 사러 약국에 가도 신자들이 하는 곳엘 가면 아주 친절하게 대해 줍니다.
신학생 면담을 하러 신학교에 갔습니다. 3학년인 신학생이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신부님, 사제가 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사제 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는 건강입니다. 아무리 의욕이 앞서도 몸이 아프면 제대로 사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운동을 열심히 하고, 체력을 키우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운동은 거의 체육학과 수준으로 한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지식입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신학, 철학, 성경, 심리학, 교리 교수법을 충실히 배우라고 했습니다. 군대 갔다 와서 좀 힘은 들지만,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셋째는 기도입니다. 정해진 기도 시간에 충실하고, 시간을 더 내서 따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했습니다. 기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리 건강해도, 지식이 뛰어나도 금세 지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적 독서를 하고, 가능하면 일기를 좀 쓰라고 했습니다. 건강과 지식은 눈에 보이는데 기도는 분심도 들고 어렵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일들에 많은 시간을 소비합니다.
돈 버는 일, 명예를 얻는 일, 권력을 얻는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보다 더 소중한 일에는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돈을 10년 동안 벌 수 있어도 돈 번 10년 동안에 잃어버린 건강은 다시 살 수 없는데도 우리는 건강보다 돈을 버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곤 합니다.
소중한 일이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가족을 돌보는 일, 건강을 돌보는 일, 이웃과 신뢰를 쌓는 일, 명상과 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만나는 일 등이 있습니다. 바로 인생을 주도적으로 사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주도적인 삶을 살면 여유가 생기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생기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끊임없이 주도적인 삶을 사셨다고 하겠습니다. 제자의 배반에도, 유다인들의 조롱에도, 하느님의 무심함까지도 예수님은 반사적 반응을 보이지 않고 주도적 삶을 사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하지만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너희에게 평화를 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사도들은 과감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음식을 나누는 일, 재산을 관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더욱 소중한 일을 하기로 결정을 내립니다.
“우리는 오직 기도와 전도하는 일에만 힘쓰겠습니다.” 그리고 재물과 음식을 나누는 일은 “신망이 두텁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들에게 맡기게 됩니다.”
그러자 하느님의 말씀은 널리 퍼졌고 예루살렘에서는 신도들의 수효가 부쩍 늘어났으며 수많은 사제도 예수를 믿게 됐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재물과 권력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래서 영원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십니다.
낯선 곳을 여행할 때 꼭 필요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지도’입니다. 지도에는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까지의 길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어느 길이 가장 빠르고 손쉬운 길인지, 어느 곳에서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는 가게가 있는지, 어느 곳에서 피곤한 몸을 쉴 수 있는지 나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가 머무를 곳에 미리 가 볼 것이다. 그곳은 머무를 곳이 참으로 많다. 이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는 너희가 들어갈 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우리가 가야 할 하느님 나라의 지도입니다. 그분의 말씀과 행동과 기적은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이 표시된 지도입니다. 우리의 지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한 번뿐인 우리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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