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남 신부(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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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복음을 묵상하다 의문이 생겼습니다. 왜 주님께서는 그 당시의 그럴듯한 사람들을 제자로 뽑지 않으시고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은 사람, 그리고 성격이 전혀 다른 사람들을 제자로 뽑으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저 같으면 제 말을 잘 듣는 사람들을 뽑았을 것 같은데요
답: 당연히 그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깊은 뜻으로 그런 선택을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각기 다른 열두 제자를 선택하신 것은 신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도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신학적으로 열두 사도는 열두 부족이 통합된 이스라엘 왕국을 의미하는데 모든 사람이 갈라지지 않고 함께하는 것이 하느님 나라라는 개념이지요.
심리치료에서는 통합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내 안의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진 자아들이 하나로 통합되었을 때 가장 성숙하고 건강한 인격체가 된다는 개념입니다. 주님의 제자 선발은 이런 여러 면을 깊이 생각하고 고려한 결과입니다. 주님께서는 각기 개성이 강한, 그리고 독특한 콤플렉스들을 가진 사람들로 제자단을 구성하셨습니다. 개성이 강하고 콤플렉스가 강한 사람들은 마치 단단한 돌과도 같습니다. 그러면 이런 모난 돌들을 부드럽고 아름다운 돌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모난 돌들끼리 치고받고 갈등을 겪게 해야 합니다. 나하고 맞지 않는 사람들과 같은 공동체 안에서 사는 동안에 우리는 온갖 짜증과 미움, 갈등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래도 떠나지 않고 잘 참고 견디다 보면 다른 사람 안의 문제가 그만의 것이 아니라 내 안에도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때부터 소위 심리적 통합이 이루어지고 관대한 마음과 겸허한 마음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관점에서 서로 잘 안 맞을 듯싶은 열두 제자를 선발하셨습니다. 당신의 부활 후 지켜나가야 할 교회의 앞날에 발생할 여러 가지 갈등들을 해결할 힘과 방법을 제자들이 먼저 경험하게 하려는 깊은 의도가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사제가 되려는 성소자들은 의무적으로 신학교에서 공동생활을 합니다. 자기 방, 자기 공간이 없이 마치 군대 내무반 같은 곳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데다 성당도 식당도 지정석이어서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안팎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시간이 가면서 각자가 가진 개성, 모난 돌 같은 심성들이 드러나고 갈등을 겪고 심리적 혼란을 겪어야 합니다. 그런 과정 안에서 만민을 구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원대한 꿈은 사라져버리고 내가 이렇게 속이 좁은 자였나 하는 자기 실망감이 일어납니다. 이런 쉽지 않은 과정을 잘 참고 버티고 부제품을 받을 때쯤이면 하느님 없이는 나 같은 존재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로구나 하는 자각이 들고 그때부터 하느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심리적 통합에 대해 부연설명을 하자면 신학이건 심리학이건 완전한 사람이란 명제를 다루는데 심리학에서의 완전한 인격체란 결함 없는 순수인격체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러 요소의 통합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개념은 공동체에도 적용돼 완전한 공동체란 일사불란하게 한마음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다양한 소리가 서로를 존중하면서 동행하는 공동체, 끊임없이 갈등이 일어나지만, 그 갈등을 소통과 경청과 존중으로 풀어가는 공동체를 건강한 공동체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성 심리 관점에서는 완성이 끝난 사람은 아무도 없고 완전한 공동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완전을 향하여 진화해가는 과정 중에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일사불란한 마음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개 지배욕구가 강한 독재자 성향의 사람들이 그런 말을 자주 하는데 그런 사람들을 볼 때면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들과도 함께 지낼 것을 강조하신 주님의 말씀이 얼마나 깊은 생각에서 하신 말씀인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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