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일(마태 16,21-27)
| ▲ 조재형 신부(서울대교구 성소국장) |
우리 속담에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잘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힘든 사람들은 힘든 사람들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게 사셨기에 가난한 사람의 심정을 아십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의 사제는 연약한 우리의 사정을 몰라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마찬가지로 모든 일에 유혹을 받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셨습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심정을 아심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고, 그 필요를 채우실 수 있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사정을 아시려고 일부러 멸시의 길을 선택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가난한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오히려 가난한 것이 더 좋은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부와 가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하셨습니다. 가난하기에 더 기도하고 하느님께 더 많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심하게 야단을 맞았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먼저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베드로 사도의 그 심정이 잘 이해가 됩니다. 아마도 저 역시 하느님의 뜻보다는 사람의 일을 먼저 생각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릴 때 어머니에게 자주 꾸중을 들었습니다. ‘동생과 다툰다고, 공부하지 않고 논다고, 형제들끼리 티격태격 다툰다고, 성당에 가지 않았다고, 기도하지 않고 잔다’고 꾸중을 듣던 종류도 참 많았습니다. 학교에 가서도 야단맞을 때가 많았습니다. 단체기합을 받을 때도 있고, 숙제하지 않아서 혼나기도 하고, 선생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니 오늘 예수님께 혼난 베드로 사도의 일이 꼭 저의 일처럼 느껴집니다.
교구 인사이동이 있었습니다. 인사이동의 권한은 교구장님의 고유한 권한이기 때문에 사제들은 순명하면서 새로운 임지로 떠나게 됩니다. 인사이동의 대상이 되는 신부님들과 새로운 곳으로 가는 신부님들의 임지를 봅니다. 알게 모르게 저 자신도 인사이동에 대해서 몇 가지 기준을 갖는 것을 봅니다. ‘성당의 신자 수는 얼마인가, 새로이 성전을 신축해야 하는가, 재정 상태는 양호한가, 보좌신부님은 계시는가, 수녀님은 계시는지, 지역은 어떤 곳인지’를 살펴보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 꾸중을 들은 베드로 사도처럼 저 역시도 예수님께 꾸중을 들을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랑을 줄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이 희생할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이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생각한다면 세상의 기준은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힘들고 어려운 곳에서 하느님의 뜻을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인수인계를 할 때에도 재정 상태를 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봉성체 환자는 얼마인지, 지역에 돌봐야 할 가난한 이들은 어느 정도인지, 상담해야 할 신자분들은 얼마인지를 함께 나누면 좋겠습니다.
제 동창 신부 2명은 10년 이상 ‘선교본당’에서 가난한 형제자매들과 지내고 있습니다. 사제관이 성당이 되고, 회합실이 되고, 어린이들 놀이터가 되고, 사제관에서 음식도 나누는 생활을 10년 이상 하고 있습니다. 한 친구의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신부님도 이제 번듯한 성당에서 본당신부 한번 해야지!” 아버지의 눈에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 지내는 아들 사제가 안쓰럽게 보였나 봅니다. 동창모임에서 해맑게 웃는 친구의 모습을 보니 저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친구가 존경스럽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아니 저에게,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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