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재식 신부(안동교구 사벌퇴강본당 주임) |
어머니 품 안에서 곤히 잠을 자고 있는 아기의 모습, 열심히 일한 후 잠시 나무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는 시골 농부를 상상하면 ‘평화’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오늘은 세계 평화의 날이자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상상해보니 세상은 그렇게 평화로워 보이질 않습니다.우리 사회를 생각해봅니다.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 상태인 세월호 참사로 우리의 몸과 마음은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었는지요? 분노와 허탈 그리고 슬픔은 언제 내려놓을 수 있을지… 막막한 심정입니다. 저는 남성우월주의나 페미니즘을 반대합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가 3명의 여성 때문에 혼란스러운 것 같아 이야기를 꺼내볼까 합니다. 그중 한 분은 현직 대통령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다수가 우리를 위해 봉사할 자격과 능력을 갖추었다고 인정해 대통령으로 선출했지만, 지금은 국민들이 거대한 세월호에 탑승한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박현정 서울시향 대표 사건도 제게 크나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는 세계적인 대학에서 교육학ㆍ사회학 석박사 과정을 이수한, 우리 사회가 낸 지성인이었으며 기업ㆍ국가ㆍ사회가 인정한 ‘리더’였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너무나 폭력적이고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를 보며 ‘보편’이라는 근본적인 가치의 기준점을 잃게 되었습니다. 인류가 사회를 형성하고 발전시킬 능력이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이른바 ‘대한항공’ 사건 전체의 흐름에서도 거대하고 강력한 장벽을 보게 됩니다. 물질에 의해 차단된 장벽이 아니라 ‘존재의 장벽’입니다. 모든 것을 갖추고 태어난 이들의 눈에 비친 ‘평범한 사람’들은 3차원의 존재가 아닌 2차원적인 존재인 것 같아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정말이지 솟아오는 분노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습니다. 일련의 사건들을 보며 희망과 평화의 여인들, 어머니들을 생각했습니다. 맹자의 어머니를 통해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과 마음을 보았습니다. 러시아 작가 막심 고리키의 소설 「어머니」에 등장하는 ‘닐로브나’를 통해 아픔을 치유하는 어머니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문맹이었습니다. 남편에게 폭행당하고 자식에게는 무시를 당하던 차르 시대의 전형적인 시골 여인이 자식, 사회와의 대화를 통해 사회변혁을 꿈꾸는 모든 이의 어머니로 거듭 태어나게 됩니다. 희망이라고는 전혀 없는 허무한 인생을 선택한 룻을 생각해봅니다. 자식도 남편도 없이 가난한 과부인 시어머니를 따라 고통의 삶을 선택한 룻은 “오직 죽음만이 저와 어머니를 갈라놓을 수 있습니다”(룻 1,17)라고 선포합니다. 여기서 인간의 깊은 신뢰와 아름다움을 발견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주인공인 성모님을 생각해봅니다. 생명 포기를 결심하면서까지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모습은(루카 1,34-38) 하느님께 자신의 온 삶을 봉헌하는 신앙인의 근본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한 예수님의 소년 시절(루카 2,41-52)을 보며 가정 교육에 대한 성모님의 열의와 성과를 접하게 됩니다. 비록 시골에서 목수의 아내로 살았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가정을 돌보시는 지극한 사랑의 어머니이심을 발견합니다. 성모님께서 가장 멋진 분임이 드러나는 부분은 바로 십자가 상에서 인간적 치욕과 엄청난 고통을 당하시는 예수님과 동행하신 모습(요한 19,25-27)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식을 잃는 충격 때문에 제자들과 정부를 원망하고 통곡하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좌절과 아픔을 극복하고 아들이 생각한 참 인간의 길, 참 구원의 길을 제자들과 함께 행진하시는 성모님에게서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봅니다. 하느님의 어머니 조건은 무엇일까요? 지적 능력, 혈통, 빈부의 차이가 아니라 신뢰와 사랑으로 언제나 우리 곁에서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실천하시고 가르쳐주시며 우리와 동행하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의 어머니입니다. “신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할 수가 없었으므로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유다인의 격언이 있습니다. 올 한 해 많이 하느님을 만나고 함께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우리 모두 성모님의 마음을 가슴속에 새기고, 멈추지 말고 힘차게 사랑과 평화의 행진을 합시다. 아멘! 아멘!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