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도시]
<36> 길갈
드디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다
▲ 길갈에서 친교 제물을 바치는 사울. 사무엘은 그를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한다. 열왕기의 세밀화, 콘스탄티노폴리스, 11세기, 바티칸 도서관, 로마. 출처=「성경 역사 지도」, 분도출판사 |
길갈은 요르단 강에서 약 10㎞ 정도 떨어진 지역이며, 예리코까지 약 3㎞ 정도 거리에 있는 지역으로 추정된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간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첫 번째 난관에 부딪힌다. 이들을 가로막은 것은 요르단 강이었다. 여호수아는 계약의 궤를 멘 제사장들을 앞세웠다. “주 여러분의 하느님의 계약 궤와 그 궤를 멘 레위인 사제들을 보거든, 여러분이 있던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라가시오”(여호 3,3).
제사장들이 거침없이 요르단 강에 발을 디디자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요르단 강물의 흐름이 멈춰 서고, 제사장들이 강 한가운데 머무를 때는 강이 마른 땅으로 변했다. 이렇게 제사장들을 뒤따른 백성들은 요르단 강을 무사히 건너게 되었다. “주님의 계약 궤를 멘 사제들이 요르단 강 한복판 마른 땅에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동안, 온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건너서, 마침내 온 겨레가 다 건너간 것이다”(여호 3,17).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약속을 믿으면 어떠한 난관도 은혜로 건널 수 있음을 체험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하신 일을 기념하기 위해 열두 지파에서 가져온 열두 개의 돌로 기념비를 세웠다. 이들은 예리코 성 동쪽 경계 길갈이라는 곳에 진을 치고, 바로 그 길갈에 그 돌을 세웠다(여호 4,19-20). 이처럼 길갈은 가나안 정복을 위한 전초기지였고 승리의 장소가 되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 첫 파스카 축제를 이곳에서 지냈고 오랫동안 광야 생활 동안 하지 못한 할례를 베풀었다(여호 5,2-12).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는 하느님과의 언약 관계 회복과 순종의 의미를 지녔고 하느님께서 선택한 백성이란 증표였다. 요르단 강을 건넌 이들은 광야에서 40년간 떠돌이 생활을 할 때 태어난 이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아직 할례를 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길갈’의 뜻은 ‘굴러간다’는 의미다. 하느님이 약속하신 땅에 들어왔고 이스라엘 젊은이들의 할례가 이뤄져 ‘이집트의 수치’는 굴러가 버렸다는 의미가 된다.
가나안 정복 후에 길갈은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었고, 가나안 정복 및 초기 시대에 정치, 군사, 종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왕정 초기에 이곳은 사무엘 예언자가 이스라엘을 순회하며 다스리던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1사무 7,16). 암몬과의 전쟁 직후 이스라엘의 첫 임금이 된 사울이 즉위식을 한 곳이 바로 길갈이다. 그만큼 큰 의미를 지닌 장소다.
“온 백성은 길갈로 가 주님 앞에서 사울을 임금으로 세우고, 주님께 친교 제물을 바쳤다. 거기에서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크게 기뻐하였다”(1사무 11,15).
그러나 왕국 분열 후 북이스라엘에서는 길갈에 우상을 세우고 숭배하여 선지자들로부터 자주 책망을 듣기도 하였다.
“그들의 모든 악이 길갈에서 드러나 그곳에서 내가 그들을 미워하게 되었다. 그들의 악한 행실 때문에 나는 그들을 내 집에서 쫓아내리라. 나는 더 이상 그들을 사랑하지 않으리라. 그들의 대신들은 모두 반항이나 하는 것들”(호세 9,15).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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