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땅

(37) 에벤 에제르

namsarang 2015. 4. 15. 11:26

[성경 속 도시]

(37) 에벤 에제르

 

주님께 감사하며 기념비를 세우다



▲ 이스라엘인들이 승전 후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에벤 에제르에 돌로 기념비를 세웠다. 사진은 파란 광야 북쪽 산 근처에 세워져 있는 거룩한 돌. 출처=「성경 역사 지도」, 분도출판사



에벤 에제르는 이스라엘의 아펙 근처의 한 마을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펙에 진을 치고 있던 필리스티아인을 맞아 이곳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패배했다. 당시 이스라엘의 가장 위협적인 세력은 필리스티아인들이었다. 필리스티아인들은 주로 지중해 해안 평야가 정착지였고 이스라엘 백성은 주로 중앙 산지에 정착하였다. 해안 평야에 정착한 필리스티아인들과 산지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은 자주 충돌했다. 이 두 민족끼리 치른 중요한 전쟁이 사론 평야와 에브라임 산지의 경계 지역인 아펙과 에벤 에제르에서 일어났다.

이 전쟁들은 이스라엘의 국가 체제를 크게 변화시켰다. “그리하여 사무엘의 말은 그대로 온 이스라엘에 전해졌다.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인들과 싸우러 나가 에벤 에제르에 진을 치고, 필리스티아인들은 아펙에 진을 쳤다”(1사무 4,1).

전쟁에서 패한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실로로 사람을 보내어 그곳에서 ‘계약 궤’를 전쟁터로 가져오게 했다. 이 계약 궤란 양편에 황금의 두 천사가 날개를 편 상(像)이 놓여 있는 네모난 상자를 말한다. 구약 시대 모세가 받은 십계 판을 이 상자에 담아 성막에 보관했다. 왕조 시대 이전에는 전쟁의 수호신 등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은 40년간 광야 생활을 하게 된다. 광야는 위험한 곳으로 식량과 물 부족 등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또 이민족의 침입과 질병 역시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부딪쳐야 할 두려움이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 속에서 주님의 도움 없이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함을 깨닫게 된다. 이런 역사적 상황에서 계약 궤는 이스라엘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었다.

“그리하여 백성은 실로에 사람들을 보내어, 거기에서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만군의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 왔다.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하느님의 계약 궤와 함께 왔다”(1사무 4,4).

이스라엘은 계약 궤가 승리를 가져다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두 번째 전쟁에서도 대패했다. 설상가상으로 계약 궤마저 탈취당하고 말았다. “필리스티아인들이 이렇게 싸우자, 이스라엘은 패배하여 저마다 자기 천막으로 도망쳤다. 이리하여 대살육이 벌어졌는데, 이스라엘군은 보병이 삼만이나 쓰러졌으며, 하느님의 궤도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죽었다”(1사무 4,10-11).

그 후에 필리스티아인들이 하느님의 궤 때문에 벌을 받게 되고(1사무 5, 1-12 참조) 우여곡절 끝에 이스라엘은 다시 계약 궤를 되찾아 온다. 본래 주님의 계약 궤 상자는 시나이 산에서 제작된 후, 길갈에 안치됐고 이는 다시 베델, 실로를 거쳐, 잠시 필리스티아인들에게 빼앗겼다(1사무 4,11). 그후 다윗 시대에는 예루살렘에, 그리고 솔로몬은 성전 지성소(1열왕 6,19)에 이를 안치했다.

이스라엘이 계약 궤를 되찾은 후 예언자 사무엘은 기념비를 세우고 ‘에벤 에제르’라고 불렀다. “사무엘은 돌을 하나 가져다가 미츠파와 센 사이에 세우고, “주님께서 여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하며, 그 돌의 이름을 에벤 에제르라 하였다”(1사무 7,12).

이처럼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있을 때 이것을 기념하고 후대에 기억하기 위해 돌로 기념비를 세우는 일은 구약에 자주 나타난다. 에벤 에제르는 이스라엘이 필리스티아인을 이긴 후 도움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세운 기념비의 이름이며, 이후에 그곳 지명이 된 경우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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