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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은 범죄집단" 자기최면에 걸린 野

namsarang 2015. 7. 29. 23:05

[김창균 칼럼]

"국정원은 범죄집단" 자기최면에 걸린 野

 

입력 : 2015.07.29 03:20

해킹 프로그램 구입 알려지자 '민간인 사찰했을 것' 지레짐작
對北 정보활동을 범죄로 몰고 근거도 못 대면서 검찰 고발까지
쏟아졌던 의혹 차례차례 해명돼… 잘못된 선입견 접을 줄도 알아야

김창균 부국장 겸 사회부장 사진

김창균 부국장 겸 사회부장

 

"옆집이 4년 전에 식칼을 몰래 구입했다. 주방에서 썼다고 주장하지만 믿을 수 없다. 그 칼로 사람을 죽였을 것이다. 누가 피살됐는지, 옆집 식구 중 누가 그랬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옆집에 살인범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 식구가 의심스럽다는 주민 열 명의 서명도 받아 왔다."

경찰서를 찾아온 사람이 이런 주장을 하면서 수사를 요구한다면 얼마나 황당할 것인가. 그런데 실제 이와 비슷한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홈페이지를 열면 대문에 '혹시 내 폰도 사찰되는 게 아닐까. 권력기관의 불법적인 사생활 훔쳐보기는 반(反)헌법 행위'라는 글귀가 걸려있다. 국정원이 2011년 11월 이탈리아 IT업체로부터 구입한 해킹 프로그램으로 민간인 사찰을 해 왔다는 주장이다.

새정치연합은 7월 23일 서울중앙지검에 국정원을 고발했다. 고발장은 A4용지 12장이다. 고발장에는 범죄행위를 구체적으로 적어야 한다. 그래야 수사를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이 제출한 고발장에는 6하(何) 원칙이 실종 상태다. 민간인 사찰을 고발한다면서 사찰 대상자 이름을 한 명도 제시하지 못했다. 국정원 직원 중 누구를 고발하는지도 공란으로 남겨뒀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모르는데 언제, 어디서 범죄가 벌어졌는지 알 턱이 없다. 고발장을 들춰본 법조 관계자는 "일반 형사사건에서 이처럼 허술하게 남을 고발했다가는 무고(誣告)죄로 되치기를 당할 것"이라고 했다.

고발장 마지막 부분에는 범죄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 목록을 적게끔 돼 있다. 새정치연합 고발장에는 한겨레·경향·오마이뉴스·jtbc 등이 국정원 해킹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기사 10건이 나열돼 있다. 그게 전부다.

야권과 친야(親野) 매체들은 국정원이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했다는 사실을 접한 순간부터 '민간인을 사찰했을 것'이라고 예단하고 거기 맞는 증거를 찾으려 눈을 부릅떴다. 7월 중순 "국정원이 2013년 10월 재미과학자 안수명씨를 해킹하려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안씨는 천안함 폭침 원인에 대한 정부 발표를 반박했던 인물이다. '정치적 목적의 민간인 사찰'이라는 야권이 원하는 구도와 딱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안씨는 미국 국적인 데다 대북 용의점이 있는 인물로 확인됐다. 그의 수상한 행적은 미(美) 공군 관련 사이트에도 기재돼 있다. 안씨는 국정원이 영장 없이도 해킹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국정원에 해킹 프로그램 구입을 알선한 나나테크 허손구 대표의 "국정원의 주 타깃은 중국 내 내국인이었다"는 인터뷰 발언이 그 며칠 후 나왔다. 우리 국민을 해킹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고 또 한 번 떠들썩했다. 그러나 보도가 나간 후 허 대표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조선족을 내국인으로 잘못 알았다"고 정정했다. 허 대표는 해킹 대상자의 국적(國籍)을 확인할 정보가 애당초 없었다. 그들이 한글을 사용하고 한국식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그래서 내국인이라고 지레짐작했던 것이다. "국정원 타깃은 중국 내 내국인"이라는 허 대표 발언에 야권은 "국정원이 사찰을 했다"고 흥분했지만 같은 보도를 읽은 기업인 A씨는 "국정원이 제 할 일을 하고 있더라"며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그는 "국정원이 자신의 존재 이유인 대북(對北) 정보 수집을 위해 감시해야 할 핵심 대상이 중국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범(汎)한국계 인사들 아니냐"며 "그들의 국적이 한국인지, 북한인지, 중국인지는 부차적인 문제"라고 했다.

야권이 마지막까지 기대했던 것은 "국정원 해킹 대상에 SK텔레콤 국내 IP(인터넷주소)가 포함돼 있다"는 정보였다. 국정원은 24일 국회 정보위에서 야당이 지목한 IP를 쓰는 휴대전화 번호들을 공개했는데 모두 국정원 실험용이었다.

민간인 사찰 의혹을 뒷받침할 근거들이 차례차례 허물어지자 야권은 다른 시빗거리를 찾고 있다. "외국인을 상대로 한 해킹도 불법 소지가 있으며, 외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이 미국 공직자 2200만명의 인사 정보를 해킹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이를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미국이 중국의 불법 해킹을 확인한 방법 역시 불법 해킹이었기 때문이다. 미 정보기관 관계자는 "나는 중국을 비난하지 않는다. 할 수만 있다면 나라도 당장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것이 전 세계 스파이들의 숙명이다.

야권은 '국정원은 범죄집단'이라는 선입견 내지 '국정원은 범죄집단이어야 한다'는 당위론에 집착하다가 자기최면에 빠져 버렸다. 그래서 국정원 본연의 임무인 대북 정보활동마저 그들 망막에는 민간인 사찰 범죄 행위로 비틀려 투영되는 병리(病理) 현상으로 발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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